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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2) 과학기술로 북한읽기 3

과학기술발전 10개년 전망계획(1957~1966)에 대한 잘못된 이해

과학기술발전 10개년 전망계획(1957~1966)에 대한 잘못된 이해




한호석 선생님의 글은 항상 참신한 지점이 많았는데 이번 글([개벽예감 321] 평양의 밤하늘 수놓은 4차 산업혁명의 불빛, 2018/11/05)은 아쉬운 점이 많다. 

북한의 과학기술, 기술혁신 등에 대한 이야기에서 약간씩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이 부분이 두드러져서 여기서나마 의견을 남긴다. 


북한의 국방력(미사일, 핵 등)이 뛰어난 배경으로 과학기술 중시정책을 거론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과학기술 중시 정책을 편다고 해서 국방력이 항상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과학기술 중시 정책을 편다고 경제가, 기술혁신이 제대로 된다는 보장은 없다. 

(북한의 예상외로 발달한 국방력을 보면서, 북한의 경제도 당연히 발전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말 당연한 것일까? )


이번 글에는 아래와 같은 문장이 있다. 


"1957년부터 1966년까지 10년 동안 조선의 과학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되었으며, 조선의 산업 전반이 기계화, 전기화, 화학화되어 세계경제발전사에서 유례가 없는 초고속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조선에서 ‘천리마운동’이 일어난 것도 바로 그 시기였다."


북이 처음으로 장기간에 걸친 과학기술발전계획을 수립한 것은 1957~1966년 기간에 대한 것이 맞다. 

하지만 이것과 1956년 12월에 시작된 천리마운동은 상관이 없다. 이 당시 천리마운동은 약간 우발적으로, 즉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1957년부터 시작되는 첫 장기 경제발전계획인 1차 5개년계획을 코앞에 두고 소련에서 원래 약속했던 지원을 철회했기 때문이다. 


물론 1957~1958년 사이에 성과들을 잘 추스려 1959년부터 진행한 천리마작업반운동은 준비해서 진행한 것이었다.


게다가, '과학기술발전 10개년 전망계획(1957~1966)'을 만들던 초기에는 소련에 절대적으로 의지했다. 

1956년 11월부터 약 두 달 동안 북한을 방문한 소련 전문가들이 직접 참여하면서 비로소 초안 작성작업이 시작되었고 작성이 마무리된 계획의 초안은 1957년 9월부터 약 두 달 동안 북한 과학원 지도부가 직접 소련을 방문하여 검토 받았을 정도였다.


1957년부터 시작되기로 계획되었던 과학기술발전 10개년 전망계획은 소련과 북한의 사이가 틀어지는 바람에, 1957년 말부터 재검토에 들어갔다. 

결국 원래 계획기간의 초기 몇년은 계획 자체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계획과 실행은 당연히 상관성이 많이 떨어진다. 


또 이 당시 북한의 경제발전은 과학기술/과학기술자들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은 결과이긴 하지만, '산업 전반이 기계화, 전기화, 화학화'되었다고 하기는 힘들다. 


1950년대 말, 북한 경제의 급격한 성장은 다양한 원인에 의한 결과이겠지만,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 북한 산업 전반을 변화시킨 결과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게다가 이에 대한 연구가 별로 진척되지 않았다. (2007년 2월 내가 받은 박사학위 주제가 이에 대한 것인데 내 박사논문 이후에 더 깊이 파들어간 연구가 나왔다는 이야기는 못들었다.)


다만 이 시기에, 기술혁신을 통한 경제발전 전략의 가능성을 보였던 것 같고, 이에 기초한 구체적인 정책들이 마련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북한 지도부는 이런 전략에 자신감을 가졌던 것 같다. 


그래서 한호석 선생님의 이번 글에 있는 다음 문장도 과도한 일반화의 오류가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1957~1967년 과학발전 10년 계획’이 ‘천리마운동’으로 수행되었던 것처럼, ‘2012~2022년 과학기술발전 장기계획’도 ‘만리마속도창조운동’으로 수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장기계획-천리마/만리마

의 유비관계는 약간 무리한 댓구(?)라 할 수 있다. 


참고하시라고,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이 포함된, 10년 전에 쓴 논문 한 편 첨부합니다. 


“제10장 북한의 현장중심 과학기술정책의 형성과정: 일본과 소련의 영향에서 독립하기”, 󰡔한국 현대 과학기술의 사회사 연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2006), 174-190쪽.


강호제-북한의 현장중심 과학기술정책이 형성되는 과정-일본과 소련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립하기-한림원-2006.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