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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5일청년광산

24. 처음으로 강성대국 대문에 들어선 마을 '3월5일청년광산' 처음으로 강성대국 대문에 들어선 마을 '3월5일청년광산' 강호제 (협)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소장,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소장, 1954년 어느 날, 전쟁 시기 중국 길림성으로 피난갔던 리종만이 귀국하여 김일성 주석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리종만은 전국 각지에 10여 개의 큰 광산과 수백 개의 광구를 가진 ‘대동광업주식회사’, ‘대동광산조합’과 수백 만평의 토지를 가지고 당시로선 파격적인 3:7 소작제를 시행한 ‘대동농촌사’, ‘대동출판사’, 그리고 평양의 ‘대동공업전문학교’ 등 ‘대동콘체른’이라 불린 총 5개 거대 사업체의 수장을 지낸 일제 시기 대표적인 사업가 중 한 사람이다. 1949년 평양에서 열린 ‘조국통일 민주주의 결성대회’에 조선산업건설협의회 회장 자격으로 월북했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 그는 .. 더보기
(민족21, 2010년 11월호) 처음으로 강성대국 대문에 들어선 마을 '3월5일청년광산' 1954년 어느 날, 전쟁 시기 중국 길림성으로 피난갔던 리종만이 귀국하여 김일성 주석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리종만은 전국 각지에 10여 개의 큰 광산과 수백 개의 광구를 가진 ‘대동광업주식회사’, ‘대동광산조합’와 수백 만평의 토지를 가지고 당시로선 파격적인 3:7 소작제를 시행한 ‘대동농촌사’, ‘대동출판사’, 그리고 평양의 ‘대동공업전문학교’ 등 ‘대동콘체른’이라 불린 총 5개 거대 사업체의 수장을 지낸 일제 시기 대표적인 사업가 중 한 사람이다. 1949년 평양에서 열린 ‘조국통일 민주주의 결성대회’에 조선산업건설협의회 회장 자격으로 월북했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 그는 애국열사릉에 안치된 유일한 자본가 계급 출신이다. “객지 생활이 많이 불편하셨지요?” “아닙니다. 모두들 힘들었을텐데 잘 챙겨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