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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

3. 북 과학기술 활동의 중심, 과학원 설립 북 과학기술 활동의 중심, 과학원 설립 강호제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소장) 1952년 4월 27일 평양의 모란봉 지하극장에 약 400여 명의 과학기술자들이 모여들었다. 두 번째 전국 규모의 과학기술자 대회가 3일에 걸쳐 개최되었기 때문이다. 개막 연설을 통해 김일성은 자신의 과학기술 정책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밝혔다. “동무들, 우리나라 경제는 미군의 폭격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파괴, 낙후되었습니다. 조만간 전쟁이 끝나게 되면 우리는 대대적인 전후복구사업과 함께 경제건설사업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공업화 수준을 높여 빠른 시일 내에 사회주의 공업국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자면 여러분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과학기술의 뒷받침 없는 공업화는 불가능하니까요. .. 더보기
2. 북 과학기술계의 초석, 월북 과학기술자 북 과학기술계의 초석, 월북 과학기술자 강호제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소장) 1947년 어느 날, ‘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안(국대안)’ 파동으로 인해 경성대학 교수직을 던지고 고향인 전남 담양에 내려와 있던 리승기에게 북에서 사람이 내려왔다. “리 선생, 이번에 고생 많이 하셨다는 소식 듣고 찾아왔습니다. 선생과 같이 유능한 과학자가 연구에 매진하지 못하고 후학 양성에도 힘쓰지 못하고 계시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어쩌겠습니까, 제 능력과 신망이 이정도 뿐인 것을...” “리 선생, 그래도 계속 이곳에 남아 계실 겁니까? 북으로 갑시다. 그곳에서 편안하게 연구하면서 제자를 길러냅시다. 그리고 선생이 개발한 비날론을 공업화해서 우리 인민들이 따뜻하고 예쁜 옷을 부족함 없이 맘껏 입을.. 더보기
(민족21 2011-2월호) 북 화학공업의 중심지, 함흥화학공업도시의 형성 (민족21 2011-2월호) 북 화학공업의 중심지, 함흥화학공업도시의 형성 1960년 9월 1일, 비날론공장이 건설되고 있던 함흥시에서 ‘비날론 공장 건설 관계부문 열성자 회의’가 열렸다. 세계 최대 규모의 비날론 공장 건설을 제4차 당대회가 개최될 1961년 9월 이전에 완성하기 위한 대책모임이었다. 비날론은 리승기가 일제시기에 개발한 기술을 바탕으로 북에서 공업화에 성공한 합성섬유이다. 리승기가 월북할 한국전쟁시기까지는 비날론을 공업화하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직 많이 남아있었지만 북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1961년에 대규모 비날론 공장이 완공될 정도로 비날론 공업화 기술은 급속하게 발전하였다. 비날론 공업화 연구는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1952년부터 일산 20kg(연산 80t)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