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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2) 과학기술로 북한읽기 3

간추린 북한 과학기술정책 70년의 역사 (3/3) : 1990~2010년대 말.

민족문제연구소와 내일을여는역사재단에서 발행하는 

내일을 여는 역사 라는 계간지에 

“간추린 북한 과학기술정책 70년의 역사”

라는 글을 썼습니다. 

간추리긴 했지만 조금은 긴 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몇 차례 나누어 올리겠습니다. 

 

지금까지 글로 써서 발표하지 않은 1970-80년대 이야기와 

최근의 북한 경제, 사회의 변화를 부문별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간략하게 썼습니다. 

북한 사회가 더디지만 우리 생각보다는 빠르게 혁신 친화적인 체제로 변하는 모습을 이야기했습니다. 

 

3년주기설, 그리고 스핀오프 전략의 실행 등을 이야기만 하고 글로 많이 쓰지 않아 대략의 흐름을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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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 북한 과학기술정책 70년의 역사 (3/3) : 1990~2010년대 말.

 

강호제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소장), (Freie Universität Berlin Institut für Koreastudien, Affiliated Fellow)

 

1998년 : 고난의 행군 종료, 과학기술을 앞세운 경제발전 전략 모색

2000~2002년 : 정보화시대 선언, 국방공업 우선 경제발전 전략 수립

 

1990년대 북한은 말 그대로 ‘고난’의 행군을 했다. 나라 밖에서는 서독, 소련 등 사회주의 나라들이 체제 전환해버려 블록 전체가 붕괴되었고, 미국과 핵문제가 불거져 전쟁 직전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나라 안으로는 최고 지도자 김일성 주석이 죽어 상실감이 극에 달했고 연 강수량 800~1000mm 수준인 곳에 500~700mm가 며칠 사이에 쏟아지는 집중폭우가 내려 농경지 손실이 매우 극심했다. 식량난이 심해졌고 공장 가동률이 급격히 떨어졌다. 이런 위기 상황을 겨우 벗어났다는 선언이 나온 때가 1998년이었다. 바닥을 쳤던 경제난이 서서히 회복세로 돌아서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지도부는 과학기술을 앞세워 무너진 경제를 빠른 속도로 복구하고 정상화시키곘다는 결심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1998년부터 5년 단위의 ‘1차 과학기술발전 5개년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하였다. 1993년 경제발전계획 목표 달성에 실패를 시인한 이후로 경제발전계획/전략이 다시 수립된 것이 2016년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과학기술 중심의 경제발전 계획/전략 수립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다. 또한 1999년을 ‘과학의 해’로 지정하고 1월 11일 첫 현지지도를 과학원에서 시작한 것 또한 과학기술을 우선시하여 경제난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었다. 당시 북한의 목표는 ‘강성대국’이라는 말로 표현되었는데 이를 달성하는 3가지 방법(3대 기둥) 중 하나로 과학기술이 거론되었다. 

2002년에는 ‘국방공업 우선, 경공업-농업 동시발전 전략’이 명문화되었다. 우수한 기술과 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국방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켜 국방력과 기술발전을 동시에 확보한 다음, 그 동력으로 경공업-농업을 비롯한 민수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전략이었다. 군수의 민수 전환, 즉 스핀오프 전략의 전면 도입이었다. 

북한이 새로운 전략을 수립했던 바탕에는 시대의 변화를 읽은 결과가 반영되어 있었다. 즉 ICT기술의 발전은 이전과 성격이 완전히 다른 시대의 도래, 즉 ‘정보화 시대’가 오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지식경제 시대, 수자경제 시대라는 말처럼, 시대를 규정하는 개념이 약간씩 변했지만 ICT기술의 발달에 따른 시대 변화를 이야기한다는 측면에서는 일관성이 유지되었다. 이런 시대변화에 대한 인식은 단순한 새로운 경제발전전략 수립에만 적용된 것이 아니라, 가치생산이론, 사회구성이론을 비롯하여 이전 시기에 만들어진 사회주의 이론도 새롭게 구성되기 시작했다. 

 

2009년 8월 : CNC를 앞세운 첨단돌파전략 시행

 

2002년부터 시작된 북미 사이의 2차 핵분쟁은 수 차례의 6자회담 끝에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협상에 의한 분쟁해결 시도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고 2009년 초에 합의가 공식적으로 무산되었다. 북핵 무력화 방안을 3단계로 합의한 상태에서 2008년 중순에 2단계까지는 잘 진행되었다. 북한은 핵활동 및 핵무기 제조에 대한 명확한 정보를 공개하였고 약속에도 없던 핵시설 냉각탑을 생중계까지 하면서 폭파했다. 미국은 중유 및 식량 지원 약속을 지켰고 미국이 설정했던 봉쇄 정책 중 일부를 해제하기도 했다.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합의가 이루어졌고 가장 많은 약속들이 실행에 옮겨졌다. 하지만 결국에는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북한이 거부하면서 합의가 깨어지고 말았다. 

더 이상 합의에 의한 관계 정상화를 기대하지 못하게 된 북한은 2009년 8월 새로운 전략을 선언하였다. 스스로 보유하고 있는 CNC를 비롯한 최첨단기술을 바탕으로 국방력을 확보함과 동시에 경제발전의 속도를 높이겠다는 독자노선의 선언이었다. 국방공업 부문에서 우선적으로 발전시킨 CNC기술을 토대로 더 정밀한 제품을, 더 적은 원료, 연료를 사용하여 더 빨리, 더 많이 만드는 방법을 경제발전전략으로 채택하였던 것이다. 즉 최첨단기술을 활용한 기술혁신 시스템을 갖추고 일반화하면서 북한 경제 전반을 업그레이드시키겠다는 구상이었다. 

원래는 미국과 관계정상화에 도달하게 되면 외부와 자연스럽게 소통하면서 부족한 자본과 물자 등을 공급받아 경제 전반을 빠르게 업그레이드시키겠다는 계획이었지만 결국 실패하고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전통의 ‘자립, 주체’ 노선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부문에 비해 우선적으로 지원받고 보호받던 국방 부문의 자원, 인력, 기술 등을 민수로 적극 돌리겠다는 쪽으로 흐름의 방향이 완전히 바뀐 것은 이전과 크게 달라진 부분이다. 

 

2013년 3월 : 경제-핵무력 동시 발전 전략, 인민생활 중심.

2017년 11월 : 화성-15형 시험발사 성공, 핵무력 완성 선언, 경제총력 집중

 

2009년, 협상에 의한 안전 보장, 즉 전쟁 방지가 불가능해짐에 따라 북한은 핵무력을 완성하겠다는 계획을 2013년 3월에 공식 확정하였다. 대략 5년 이내로 핵무력을 완성할 수 있다는 전망이 생겼던 것 같다. 즉 핵탄두 제조와 ICBM 개발에 대한 전략이 명확히 섰기에 핵무력을 완성하면서 동시에 경제발전을 진행할 수 있겠다는 판단을 하였던 것 같다. 실제로 북한은 2017년 11월 29일 원래 일정을 앞당겨 핵탄두 장착 가능한 ICBM 화성-15형을 시험발사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 이후 북한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였고, 핵무력을 동결시키면서 경제발전에 총력 집중한다는 새로운 전략을 2018년 4월에 채택하였다.  

한쪽에서 전쟁을 방지하는 국방력 즉 핵무력을 완성하기 위한 정책이 집행되는 순간, 다른 한쪽에서는 일상 생활 전반의 변화를 꾀하는 민수경제 업그레이드 정책도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비록 자본과 자원의 부족으로 속도는 느렸지만, 한 지점에서 모범 및 새로운 모델을 만든 다음, 그 성공 사례를 일반화, 보편화 하는 북한 특유의 새로운 사업 진행 방식은 차근차근 실행에 옮겨졌다. 중앙에서 시작해서 지방으로, 선행하는 한 부문에서 시작하여 다른 영역까지 확산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기술 및 혁신 시스템이 개발, 도입되어 갔다. 

필자가 보기에 이러한 북한 사회 및 경제 정책은 2009년을 기점으로 대략 3년마다 변한 듯하다. 핵시험도 3년 간격으로 시행되었고 인공위성 발사도 대략 3년 단위로 시행되었기에 경제 부문 정책 집행도 대략 3년 단위로 변화했던 것 같다. 로동신문 등 북한 내부 정보를 소개하는 자료들을 꾸준히 보다보니, 2012년, 2015년, 2018년 즈음에 중앙-지방, 중화학공업-경공업, 농업 부문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화학공업, 철강공업, 기계공업 등 중앙에서 관리하고 경제에서 핵심적인 부문들의 변화는 2000년대 중후반부터 2012년 혹은 2015년 즈음까지 진행되었다. 식료부문과 의료부문 등 경공업 및 농업 부문의 변화는 2012년 즈음부터 시작해서 2015년 즈음에 한창 활성화되었다. 그리고 지방공업 부문의 변화는 대략 2015년 즈음을 기점으로 두드러졌고 2018년 즈음을 지나면서 활성화되었다. 

일반 생활과 관련된 변화는 2012년 즈음부터 시작해서 2015년에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평양의 영상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을 여러 사람들이 촬영한 영상을 비교해보면 대략 느낄 수 있다. 2013년 2014년 신년사에서 중화학공업 부문보다 앞에 경공업, 농업 부문이 언급된 것도 이런 변화를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핵무력 완성하고 난 뒤, 변화된 미국의 태도에 호응하면서 협상에 임했던 북한은 2020년을 기점으로 다시 자립, 주체의 길로 돌아섰다. 북미 최고지도자가 직접 만나 협상을 하게 되면 2008년 합의보다 더 높고 확실한 합의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로 몇 차례의 정상회담을 진행하였지만 결과는 2009년처럼 또 다시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2009년 첨단돌파전략을 선언했던 당시처럼 2020년부터 북한은 다시 과학기술을 앞세워 자립, 주체의 길로 들어섰다고 선언하였다. 1956년 12월, 믿었던 소련에게 배신당하면서 천리마운동에 돌입했던 것처럼 2020년 1월, 북한은 ‘전면돌파전’에 돌입하였다. 어려울수록 남에게 기대지 않고 현장 중심으로 과학기술을 앞세워 위기를 돌파하던 전통을 그대로 실천하겠다는 결정이었다. 

2020년 북한의 변화를 과학기술을 중심에 놓고 살펴봐야 한다는 것, 그리고 1957년 혹은 2009년과 비교하면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을 명심한다면 북한의 새로운 행보 속에서 새로운 특징들이 좀 더 잘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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