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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로 본 북한 과학기술의 역사

10. 주체과학의 태동 : 연료의 자립

주체과학의 태동 : 연료의 자립



강호제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소장) (Institut für Koreastudien Freie Universität Berlin, Affiliated Fellow)



19585, 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에 과학 연구 사업에 대한 토론 안건이 올려졌다. 195612월부터 시작된 천리마운동으로 인해 기술지원활동에 대한 수요가 대폭 늘어나 당 상무위원회에서 직접 과학기술 정책들을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날은 특별히 합성고무 연구사업에 대한 사업 보고가 계획되었다. 한 달 전에 드디어 합성고무연구가 완성되어 중간공장건설을 비롯한 사업진행을 검토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지난 전쟁 시기부터 합성고무 생산을 위한 연구에 깊은 관심을 돌려왔습니다. 당시 청수로 피해있던 우리 과학자들은 그곳에서부터 합성고무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는데 이번에 드디어 연구사업을 끝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리재업 동무, 합성고무 중간공장은 규모가 얼마나 됩니까?”


 

김일성의 질문에, 당시 연구책임을 맡고 있던 리재업은 1만 톤 규모라고 대답하였다. 리재업은 1918년 대구에서 태어나 1944년 일본 경도제대 공업화학과를 졸업하고 19458월 강영창, 김두삼과 함께 월북한 사람이다. 해방 직후 북한 지역에는 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과학기술자가 십여 명에 불과했으므로 그는 바로 흥남지구 인민공장 연구과 과장 겸 시험연구소 소장으로 근무하기 시작하였다. 절대적으로 숫자가 부족한 과학기술자를 비롯한 전문가를 기르기 위해 북한 지도부는 1946년부터 소련으로 매년 300명 가량의 유학생을 파견하였는데 그는 19479월에 2차 유학생으로 선발되었고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든 이후인 195110월에 공부를 끝내고 귀국하였다. 리재업은 귀국하자마자 청수공장의 기사장으로 근무하면서 합성고무 연구를 시작하였다.

 


그래 합성고무의 원료는 무엇입니까?”


알콜입니다.”


알콜이라면 카바이드에서 만들어내는 알콜을 말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저희는 감자나 고무마를 원료로 사용하였습니다.”


 

여기서 카바이드란 석회석과 무연탄을 함께 가열하여 만드는 탄화칼슘(CaC2)을 말한다. 예전에는 포장마차에서 전등 대신에 이를 사용하였는데 요즈음도 유기합성물질을 만드는 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김일성은 북한에 풍부하게 매장된 석회석과 무연탄을 가지고 만들 수 있는 카바이드가 원료로 사용되었을 것이라 예상하고 질문하였는데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 우리나라에 풍부한 카바이드가 아니라 먹기도 부족한 감자나 고구마를 원료로 사용한다구요? ... (심각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그럼, 10만 톤가량의 합성고무를 생산하려면 감자나 고구마가 얼마나 필요합니까?”


“(당황하면서) 1톤의 고무를 얻자면 약 10톤의 알콜이 있어야 하고, 이만한 알콜을 얻자면 약 20~22톤의 감자가 듭니다. 그러니 약 200~220만톤의 감자가 필요하겠습니다.”


... (다시 생각에 잠겼다가) 2만톤이라면 모르겠지만 220만톤이라니... 아무리 합성고무가 부족하다고 해도 이정도의 감자를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 감자생산량이 어느 정도인지 타산해보았나요?”


 

수확량이 예전보다 많이 늘어나긴 하였지만 1958년 당시에도 여전히 북한의 식량 사정은 좋지 않았다. 따라서 식량으로 사용하기에도 부족한 감자나 고구마를 공업연료로 사용한다니 김일성은 용납하기 힘들었다. 반면 합성고무를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급급했던 과학기술자들이나 이를 관리하던 관료들은 이런 내용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나라의 연구사례를 그대로 따라하면서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에만 집중하였던 것이다.


 

동무들은 주체를 확실히 잃었습니다. 우리나라에 풍부한 원료들을 두고 다른 나라들처럼 감자를 이용할 생각만 하다니...”


죄송합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현재 리승기 박사가 카바이드에서 뽑은 알콜을 이용해서 비날론을 만들고 있는 만큼 감자가 아니라 카바이드에서 알콜을 뽑고 그것을 이용해서 합성고무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조금만 연구방향을 돌리면 될겁니다. 어때요, 조금 더 노력해보겠습니까?”

 


리재업은 이때부터 카바이드를 연료로 합성고무를 생산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하여 1963년에 겨우 결실을 거두었다.


이는 과학기술 성과가 기술의 자립만으로는 북한 사회에서 큰 의미를 못 가지고 원료의 자립까지 도달하여야만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북한 과학기술 발전 방향이 변하기 시작한 모습을 반영한다. 이런 변화는 이후 북한의 독특한 과학기술을 일컫는 주체과학으로 이어졌다. 연료, 원료, 기술의 자립을 기본으로 하는 북한식 과학기술은 이후 유일사상체계와 결합하면서 주체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