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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로 본 북한 과학기술의 역사

6. 자체의 힘으로 복구한 황해제철소 자체의 힘으로 복구한 황해제철소 강호제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소장), (Freie Universität Berlin Institut für Koreastudien, Affiliated Fellow) 황해제철소는 일제 시기인 1914년에 미쓰비시 재벌에 의해 설립된 겸이포제철소를 전신으로 하여 세워졌다. 대동강을 끼고 설립된 황해제철소는 동해에 세워진 김책제철소와 더불어 북의 대표적인 제철소이다. 북이 일제로부터 넘겨받은 대부분의 생산 설비가 그렇듯, 황해제철소도 해방 직후에는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다가 1948년 즈음이 되어야 재가동되기 시작하였고 1950년 전쟁이 터지면서 상당한 피해를 입어 다시 가동이 중단되었다. 1953년부터 진행된 전후복구사업의 최우선과제로 제철소 복구사업이 채택되어 일부 직장이.. 더보기
10. 주체과학의 태동 : 연료의 자립 주체과학의 태동 : 연료의 자립 강호제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소장) (Institut für Koreastudien Freie Universität Berlin, Affiliated Fellow) 1958년 5월, 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에 과학 연구 사업에 대한 토론 안건이 올려졌다. 1956년 12월부터 시작된 천리마운동으로 인해 기술지원활동에 대한 수요가 대폭 늘어나 당 상무위원회에서 직접 과학기술 정책들을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날은 특별히 합성고무 연구사업에 대한 사업 보고가 계획되었다. 한 달 전에 드디어 합성고무연구가 완성되어 중간공장건설을 비롯한 사업진행을 검토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지난 전쟁 시기부터 합성고무 생산을 위한 연구에 깊은 관심을 돌려왔습니다. 당시 청수로 피해있던.. 더보기
13. 공장대학 : 현장 중심의 기술교육 강화 공장대학 : 현장 중심의 기술교육 강화 강호제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소장) (Institut für Koreastudien Freie Universität Berlin, Affiliated Fellow) 근로대중이 과학기술력을 보유하게 하라. 1957년부터 시작된 제1차 5개년계획은 예상치 못한 근로대중들의 호응(이후 천리마운동으로 이름붙여졌다.)으로 인해 2년 반만에 초기 계획이 달성되었다. 계획 시행 1년 만에 초기 계획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수준에 도달하여 1958년 3월, 급히 소집한 제1차 당대표자회는 초기 계획을 수정하여 제1차 5개년계획을 1년 앞당긴 1960년에 마무리짓고 새로운 장기 계획을 1961년부터 시작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계획된 것이 제1차 7개년계획이다. 1967년.. 더보기
11. 주체의 시작은 정치사상이 아니라 과학기술로부터 이런 주장 들어봤나요? 주체의 시작은 과학기술이었다는... 제가 처음 주장한 건 아니고, 북한 과학기술사를 전공한 다른 분이 이야기한 건데, 제가 적극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논문으로 쓰지는 않고, 민족21 연재글로만 써봤던 겁니다. ---- 이제 '과학기술로 북한읽기 1' 20권 가량밖에 안 남았습니다. ^^ ---- 11. 주체의 시작은 정치사상이 아니라 과학기술로부터 강호제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소장) (Institut für Koreastudien Freie Universität Berlin, Affiliated Fellow) “유감이지만 우리의 선전사업은 많은 점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모든 문제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주체가 없는 것이 사상사업에서 가장 주요한 결함입니다. ….. 더보기
8. 집단적 기술혁신운동 : 북한 경제 발전의 핵심 원동력 1950년대 북한의 경제발전 전략도 '기술혁신'체제로 봐야 하는데, 하물며 2020년의 북한은? 더 후퇴했을까? 거의 최고 수준의 기술(기계, ICT, 연료, 제어계측, 소재 등)을 요구하는 ICBM과 SLBM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곳을?북한 경제 분석을 여전히, 수출입 통계와 탈북자 인터뷰에 의존하면 안 된다는 건 당연한데, 그럼 어떻게? 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이런 내용을 연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 집단적 기술혁신운동 : 북한 경제 발전의 핵심 원동력 강호제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소장) (Institut für Koreastudien Freie Universität Berlin, Affiliated Fellow) 1958년 9월 13일에서 16일까지 평양에서는 ‘전국.. 더보기
9. 천리마작업반 운동 : 북한식 기술혁신운동 '천리마운동' 하면 대부분 낡은, 무식한, 노력동원 운동으로만 기억한다. 어릴 때 배운 윤리교과서 내용에 따라. 하지만 당시 상황을 면밀히 살펴본 후 내가 내린 결론은1957년 우발적/산발전 천리마운동은 혁신운동1958년 조직적 천리마운동은 기술혁신운동으로 바뀌는 과정1959년 천리마작업반운동은 북한식 기술혁신운동으로 변해갔다. 여기에 1958년 과학기술자들의 현장진출이 핵심 역할을 했지 따라서 북한의 천리마운동은 '기술혁신'운동을 포함하고 있는 것. 2009년 김정일 위원장이 '제2 천리마운동'을 이야기했을 때에도, 잘 보면 '기술혁신운동'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었다. 요즘 이야기하는 '정면돌파전'도 무식한, 철지난 사상동원운동이 아니라 예비, 절약, 혁신을 기본으로 하는 '기술혁신운동'이라 볼 수 있다.. 더보기
5. 천리마운동이 시작되던 날 천리마운동이 시작되던 날 강호제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소장) (Institut für Koreastudien Freie Universität Berlin, Affiliated Fellow) 1956년 11월 소련은 강철재 지원 약속을 일방적으로 철회하였다. 이에 당황하여 자체적으로 조달할 방법을 백방으로 찾아보았지만 연말 직전까지도 해결책을 찾지 못하였던 북 지도부는 중요 생산현장을 분담해 직접 찾아가 해결책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김일성은 강철생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강선제강소를 맡았다. 1956년 12월 27일에 김일성이 강선제강소(현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를 현지지도하면서 천리마운동은 시작되었다. 강선제강소를 찾은 김일성은 일반 노동자들을 모두 모아두고 당시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면서.. 더보기
15. 기계공업의 자립 : 트랙터를 자체적으로 생산하다. 기계공업의 자립 : 트랙터를 자체적으로 생산하다. 강호제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소장) (Institut für Koreastudien Freie Universität Berlin, Affiliated Fellow) 1958년 11월 5일, 김일성은 기양기계공장에서 트랙터 시제품 조립이 끝났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기양기계공장으로 전화를 걸었다. 기양기계공장(‘금성뜨락또르공장’의 전신)은 원래 간단한 농기계를 생산하던 농기계제작소였지만 협동농장들의 기계화 수준을 높이기 위해 1956년부터 기계공장으로 확장하면서 트랙터를 자체적으로 생산하려고 노력하던 곳이다. 김일성의 전화에 기양기계공장 기사장이 응답했다. 그는 희천공작기계공장 기술부장으로 있다가 트랙터 생산 책임을 맡으면서 기양기계공장으로 부임한 사람이었다.. 더보기
16. 북 최초의 컴퓨터 ‘9.11형 만능 전자계산기’ 북 최초의 컴퓨터 ‘9.11형 만능 전자계산기’ 강호제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소장) (Institut für Koreastudien Freie Universität Berlin, Affiliated Fellow) “이번에 과학원에서 만든 ‘9.11형 만능 전자계산기’는 라는 5개의 장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만일 어떤 숫자를 입력을 하고 어떻게 계산하라고 명령을 하면 전자계산기가 알아서 스스로 계산을 순식간에 한 다음, 그 결과물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어떤 계산을 알아서 해준다는 이야기입니까? 뭐든지 명령하기만 하면 다 되는 건가요?” “원칙적으로는 맞지만, 그런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맞는 프로그램이 미리 마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명령이 내려지면 전자계산기는 아주 빠르게 계산을 .. 더보기
18. 설계통일을 통한 기술혁신 : 조선식 변압기의 탄생 설계통일을 통한 기술혁신 : 조선식 변압기의 탄생 강호제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소장) (Institut für Koreastudien Freie Universität Berlin, Affiliated Fellow) 1960년대 초 어느 날, 대안전기공장 제관직장에서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기술혁신에 대한 강연을 진행하였다. 강사로 나선 기술부의 기사장은 기술혁신이라는 것이 거창한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작은 부분이라도 불합리하거나 불편한 것을 수정하다 보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었다. 새로운 이론이나 방법을 개발하는 것은 과학기술을 잘 아는 과학자나 기술자들이 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작업방법에서 불합리한 점이나 불편한 점을 찾아 개선할 수 있는 아이디어는 직접 생산을 담당한 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