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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2) 과학기술로 북한읽기 3

[본격 반론] 북한을 테스트베드로 삼을 수 없다- 민경태 스마트시티에 대한 문제제기

[본격 반론] 북한을 테스트베드로 삼을 수 없다- 민경태 스마트시티에 대한 문제제기


독일 Tuebingen 대학, visiting Assistant Professor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소장

겨레하나평화연구센터 소장

과학기술로 북한읽기 1, 북한과학기술형성사 1 저자


강호제




1. 과도한 과학주의

2. 북한에 대한 몰이해

3. 개성공단은 낡은 모델이 아니다.

4. 남북교류협력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5. 남북이 함께하는 스트타업 (통일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

6. 활발한 토론을 기대하며





이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눈앞에 다가왔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미 기차를 타고 회담으로 향하는 대장정에 들어섰다. 순식간에 날아가는 비행기 길을 마다하고 먼 길을 꼬박 달려가는 만큼, 오랜 세월 이어진 질곡을 끊고 오래 갈 수 있는 좋은 성과를 기대해 본다.

아마도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가 공개되고 나면 남북 사이의 교류협력 사업도 이전과 달리 활발하게 추진될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논의된 사항들을 검토해보면 인도적 지원이나 개발협력을 넘어 ‘과학기술을 통한 교류협력’과 같은 제안들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남북 단일팀 관련 논의도 전통적인 체육 부문을 넘어 수학, 과학,  IT 분야의 올림피아드에서 진행될 듯하다. 남북의 우수한 영재들이 한 팀을 꾸려 과학기술 부문의 경시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다면, 낡은 듯한 ‘통일' 이미지에 ‘첨단', ‘미래'의 이미지가 가미될 수 있을 것이다.

민경태 박사의 스마트시티 관련 주장은 과학기술을 통한 남북 교류협력 아이디어라는 점에서 새롭고 참신하다. 여시재라고 하는 대형 민간연구단체의 지원 속에서 한겨레, 중앙일보, 프레시안 등의 언론이 그의 주장을 많이 다루어주고 있어 최근에 주목을 많이 끌고 있다. 하지만 참신한 아이디어라도 활발한 토론을 거쳐고나야 현실성 있는, 실현 가능한 정책이 될텐데 토론이 활발하게 진행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에 필자는 한겨레 ‘왜냐면' 지면을 통해 짧은 반대 토론을 시작해보았다. 원고지 9매(1800자)라는 지면의 제한때문에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한 반대토론을 이곳에서 이어가려 한다.


[왜냐면] 북한을 테스트베드로 삼을 수 없다- 강호제 (한겨레, 2019.2.20)

[기고] ‘이밥에 고깃국’을 넘어 ‘스마트시티’로-민경태 (한겨레, 2019.2.7)

'평양 올레길'부터 한반도 8대 광역권까지-민경태 (프레시안, 2018.10.13)

[북한 리포트] 남북경협 시대 주목받는 여시재의 ‘한반도 경제적 통합’ 방안-민경태 (월간중앙, 2018.9.17)


한겨레에 기고한 반론에서 필자는 두 가지 문제만 제기하였다. ‘북한에 대한 몰이해’ 그리고 ‘과도한 과학주의’가 가장 큰 문제였기에 이 부분에 집중하였다. 오늘은 여기에 몇 가지 반론을 더 추가하여 이야기하려 한다.


1. 과도한 과학주의


과학기술이 중요하다고 해서 과학기술이 만능일까? 민경태 박사의 주장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자율주행차와 같은 첨단 기술들은 빨리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이를 거부하는 것은 낡은 생각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지금 시대는 인공지능, 자율주행, 빅데이터, 블록체인, 핀테크 등 첨단 기술을 누가 먼저 도입하느냐에 따라 승패, 우열이 갈린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듯하다.

분명 지금 문명의 첨단 기술은 이러한 것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술의 구성과 실제 구체적인 모습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 방향은 대략 나왔지만 세부적인 조건을 완전히 찾은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새로운 기술을 열심히 탐구해야하는 것은 맞지만 이를 모든 사람들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 이들 기술이 우리 사회 속에서 완전히 자리잡은 것이 아니고 충분히 검증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어떤 기술이건 사회 속에서 자기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첨단기술’임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성이 적고 통제 가능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사회구성원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첨단 과학기술을 이야기하는 민경태 박사의 주장에서 과학기술의 사회적 합의와 안정성에 대한 검토를 언급하는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안타깝다.

“북한을 테스트베드로 삼자”라는 주장은 ‘과도한 과학주의자’가 아니면 제안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기술을, 역사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맥락이 전혀 다른 북한에 먼저 ‘시험(실험?)’삼아 적용해보자는 주장 속에는 낙후한 북한이 ‘첨단 기술’을 안 받을 이유가 없다라는 생각을 밑바닥에 깔고 있다. 첨단 기술이지만 아직 통제되지 않은 것에 대한 조심스러운 경계심이 거의 없다.

자기가 가진 두 개의 사과를 상대방과 나누어 먹을 때, 땅에 떨어져서 멍들고 깨진 것은 자기가 먹고 깨끗하고 먹기 좋은 사과를 상대방에게 주는 마음이 ‘배려’하는 마음이다. 우리 사회에 적용하지 못한 첨단 기술을 북한에 먼저 주는 마음은, 땅에 떨어진 사과를 주는 것이 아니라 깨끗하다고 판단한 사과를 주는 것이리라. 다만 그 속에 벌레 먹은 부분이 있거나 독이 있다고 생각 못하는 것이다. 통제되지 않은 기술에 대한 경계가 없는, ‘과도한 과학주의자’의 모습이다.

사실 민경태의 주장에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상대방이 배가 부른지 고픈지, 사과를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에 대한 고려 없이 사과를 주면, 그것도 배려의 차원에서 자기는 안 좋은 사과를 먹으면서 깨끗한 사과를 주면 상대방이 무조건 고마워할 것이라는 생각이 묻어 있다. 배가 고픈 상대방은 어떤 것이라도 먹을 것을 주기만 하면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인 듯하다. 상대방이 배가 안 고프다고 거절하면, 왜 성의를 무시하냐고 할 듯하다.

어떤 기술도 사회 속에서 자리 잡을 때에는 기술발전 경로에 영향을 받는다. 북한도 독특한 발전 경로를 따라서 발전했고 자신들에게 맞는 경제발전 전략과 과학기술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도 자신들의 기술발전 경로에 따라 새로운 기술을 도입할 것이다. 이에 대한 고려 없이 첨단 과학기술이라면 성숙한 기술인지 아닌지, 검증이 된 것인지 아닌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민경태 박사의 주장은 ‘북한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2. 북한에 대한 몰이해


사실 민경태 박사의 주장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과도한 과학주의보다 교류협력 상대방인 북한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북한의 기술 수준에 대한 평가도 박하지만 지금까지 북한 과학기술 정책의 역사에 대한 고려도 별로 없는 것 같고 북한의 전문가나 정책입안자들의 수준을 너무 무시한다. 4차 산업혁명혁명시대에 필요한 기술 중에서 우리가 북한보다 앞선 부분이 무엇인지, 정말로 북한의 수준이 우리보다 뒤떨어진 것인지 장담할 수 있을까? 북한의 IT기술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북에서 컴퓨터를 언제부터 만들었으며 어떤 맥락에서 쓰고 있는지, 과학기술자를 양성하기 위해 어떤 정책들을 펼쳐 왔는지 제대로 파악했는지 궁금하다. 북한의 현재 이동통신 기술은 3세대 수준이고 4세대 기술을 연구하는 논문이 발표되고 있는 상황인데 아직 2세대에 머물렀다고 주장하는 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닌듯하다. “단번도약, 직방도달”이라는 말도 2세대 이동통신 기술을 쓰지 않고 곧바로 3세대로 이동할 때 쓰였던 말이다.

“이해관계자나 기득권의 반대가 거의 없다”, “정책이 결정되면 일사분란하게 집행되는 정치체제"라는 말은 북한을 전체주의 국가로 보는 듯하다. 북한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사회인만큼 다양한 이해관계가 있고 그들 사이에 의견 충돌도 잦다. 우리처럼 금전적으로 환원이 잘 안 되기는 하지만 자신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권리(기득권)’를 지키려는 마음마음은 북한 사람들 속에도 여전히 있다.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를 갖추고 있고 당에 의한 일원적(유일적) 지도체계를 갖추었다는 것이 민주적 의견 수렴 절차를 없애고 명령과 집행만 남겼다는 뜻은 아니다. 인민들의 요구와 의견을 적극 반영하기 위해 대중노선을 오랫동안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던 북한의 역사를 되새겨보면 좋겠다. 당의 결정을 일사분란하게 집행하는 이유가 인민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모아서 결정한 것, 집단의 결정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북한 대중운동의 대명사인 ‘천리마운동' 당시 김일성 주석도 자기 개인의 의견을 이야기하지 않고 ‘당 중앙위원회의 결정'을 강조하였다. 반면 모택동의 경우 집단의 결정을 따르지 않고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많았다.

‘북한에 대한 몰이해’를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낸 말은 “북한을 테스트베드로 삼자”라는 주장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기술과 제품을 시험(test)하는 공간을 북한에 만들자는 것인데 북한을 마치 백지와 같은 곳으로 치부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발상이다. “북한은 현재 낙후되어 있는 인프라를 거의 모두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실현가능성이나 위험성 제거가 완전하지 않은 “이상적인 모델”을 “실험"해보자고 하는 주장은 북한을 대상화하고 무시하는 듯한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경제수준이 약간 떨어졌다고 해서, 옷차림이 남루하다고 해서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을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고 이야기하거나 다른 곳에서는 도입할 수 없는 기술의 ‘시험장'으로 쓴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이해는커녕 배려가 전혀 없는 발언이다. 북한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낡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으로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곳이 북한이다. 남한은 이해관계로 촘촘히 짜여 있는, 빈 곳이 없는 땅이고 북한은 텅 빈 곳인가? 아니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삶은 낡고 뒤떨어진 것이라 일거에 뜯어고쳐야 하는 것인가?

“북한을 테스트베드로 삼자"라는 말을 이런 식으로 해석해보면 뭔가 낯익은 느낌이 날 것이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살고 있던 그곳을 ‘발견'했다고 하면서 ‘황무지’를 개척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영국에서 이주했던 초기 이주민의 말과 비슷하지 않은가? 노천광산과 같은 자원이 널려 있으며 적당히 잘 구슬리고 적당히 윽박지르면 말 잘 듣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조선에 가서 사업을 하라고 선전하던 일제 시기 선전문과 비슷하다고 하면 너무 과한가? 북한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빼곡히 자리잡고 열심히 살고 있는, 빈 곳 없는 땅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만일 이런 비판이 불편하다면, 북한이 이와 똑같은 주장을 우리에게 했을 때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보면 된다. “70년동안 갈고 닦은 ‘주체과학'을 다른 사회에 수출하기 위한 테스트베드를 남한 사회에 만들어보자"라는 주장을 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떤 불쾌한 마음도 없이 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북한에는 우리가 시험해보고 싶은 테스트베드를 만들고, 남한에는 북한의 주체과학을 적용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를 만들자"라고 할 수 있어야 상호협력의 기본인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고려되었다고 살 수 있을텐데, 가능한가?

6.15부터 평양공동선언까지 이어지는 남북 합의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전제되어 있는 것은 호혜평등과 상호존중의 원칙이다. 돈 많은 쪽이 돈 없는 쪽에 시혜성으로 뭔가를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부족한 것을 매워주는 것, 자기가 많이 가진 것을 사이좋게 나누어쓰는 것, 즉 유무상통의 원칙이 남북이 합의한 진정한 협력의 모습이다. 서로를 무시하지 않고 동등하게 대하는 것, 쉬워보이지만 아주 어려운 원칙이다. 그래서 더 강력하게 머릿속에 새겨야 하는 말이다.


3. 개성공단은 낡은 모델이 아니다.


민경태 박사는 개성공단을 “값싼 노동력”에 의존하는 “낡은 모델”이라고 폄하하면서 “한계"가 명확한 모델이라고 평가하였다. 이런 의견은 북한에 대한 몰이해의 연장선 상에서 개성공단을 제대로 이해 못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주장을 부각시키기 위해 개성공단을 이용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주 잘못된 것이다.

우선 개성공단이 왜 멈추어 있나? 사람들이 더 이상 이용하지 않아서 멈추었나? 그것이 아니라 최고권력자의 잘못된 판단에 의해, 아무런 토론 과정 없이 갑자기 멈추게 된 것 아닌가? 오히려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들은 개성공단이 남북 협력 모델로 안정화되어 가고 있으며 남북 모두에게 득이 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멈추어버린 것이다. 개성공단 폐쇄라는 일방적 결정을, 어떤 비판도 받아들이지 않고 “일사분란하게 집행”하였던 것을 잊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개성공단이 낡았다고 주장할 수 있나? 오히려 개성공단 모델은 사회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생명력을 키우고 있던, 경쟁력 있는 모델이었다.

개성공단이 “값싼 노동력"에 의존하는 모델이었다고 이해하고 있으면 겉으로 드러난 것만 슬쩍 본 채로 평가하는 것이다. 지금 모습은 1단계만 겨우 진행된 상태이고 2, 3단계는 진척도 못한 상태이다. 원래 북한이 개성공단을 열면서 제안하고 남북이 합의한 것은 기계, 전자를 비롯한 첨단기술 산업을 유치한 미래지향적인 산업단지가 목표였다. 전쟁이 진행되는 곳의 최전선에 마련된 산업단지에 첨단 기술을 보유한 ‘대기업'이 선뜻 들어오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고 단계를 구분했다. 우선 중소기업들 중심으로 협력이 쉬운 부문부터 시작하여 협력의 분위기를 만든 다음, 중견 기업이나 대기업들이 보유한 첨단기술 부문으로 확장하는 계획이었다.

개성공단의 모델의 대명사로 거론한 “값싼 노동력"은 초기 산업 유치를 위한 북한의 통큰 양보에 의한 것이지 경제적 타산에 맞춘 이윤추구형 결정이 아니었다. 개성공단에서 100~200달러 받는 노동자들이 단둥에만 가도 500달러를 넘어가고 1000달러 이상 벌어오는 노동자도 있다는 사실은 개성공단의 임금이 이윤창출만을 위해 결정된 것이 아님을 방증한다.

아직도 개성공단은 열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개성공단을 첨단기술 산업단지로 키워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재개장하게 되면 2, 3단계로 세워두었던 계획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그 출발점으로 새롭게 고려되고 있는 것이 개성공단에 ‘남북이 함께하는 스타트업 센터'를 만드는 것이다. 기존에 없던 시장까지 만들어야 한다는 점과 첨단 기술뿐만 아니라 기존의 기술을 잘 활용하여 새로운 기술과 상품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스타트업과 남북경제협력이 같은 모습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게다가 개성공단은 평화를 만들어오고 남북이 함께 이익을 공유한 경험을 만들어낸 아주 중요한 자산이다. 전선 한 가운데 공원을 만드는 것도 대단한 일이라고 칭찬을 아까지 않는데, 공원을 넘어 공장을, 산업단지를 만들었다는 것은 인류 역사에도 길이 남을 일이다.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첨단산업까지, 스타트업에서 중견 기업까지, 남북이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첨단기술 산업단지로 개성공단을 키울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이 남았으니 여기서부터 남북교류협력이 새롭게 시작되어야 하고 꽃을 피워야 한다.


4. 남북교류협력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남북교류협력은 돈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나이든 사람이나, 기술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기업이나 사회단체나, 모든 계층, 모든 단위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오랜 세월 떨어져 살아온 남북이 하나로 합치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으려면 많이 만나야 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여러 길들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누구를 배제하고 일부의 주장만 내세워서는 제대로 된 통일의 효과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남북 교류협력 아이템으로 과학기술을 이야기할 때 가장 조심스러운 부분이 바로 이 점이다. 과학기술을 알고 이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나 단체는 그 수가 매우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북 과학기술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공동연구나 학술토론회와 같은 것은 대중화하기 어려운 주제이다. 하지만 직접 과학기술을 개발, 연구하는 쪽이 아니라 이를 잘 이해하고 잘 쓰는 쪽으로 접근하면 과학기술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남북교류협력 아이템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과학 대중화'사업이나 남북 대학생들의 무료 과외 활동과 같은 것이 가능하다. 남북의 유명한, 그리고 강의를 잘 하는 과학기술자들이 상호 방문하여 일반 대중, 시민들에게 과학기술을 쉽게 설명해주고 친숙하게 만들어주는 강연을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문턱이 낮은 사업이 될 수 있다. 또한 남북의 대학생들이 상호 방문하여 중고등학생들 공부를 돌봐주고 동생들 공부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컨텐츠를 함께 만드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민경태 박사가 주장하는 스마트 시티, 그리고 이를 위한 테스트베드 건설은 일반 과학기술 아이템보다 문턱이 몇 배 높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첨단 기술을 연구할 기술력도 있어야 하고 아직 시장에서 수익을 발생시키지 못하는 상태에서 연구할 수 있는 자본력도 있어야 한다. 게다가 거대한 테스트베드를 만들어 활용할 수 있는 정도의 규모를 감당하려면 중소기업 수준의 자본력으로도 감당하기 어렵다. 따라서 그의 주장은 대기업 중심의 교류협력에만 도움이 되는 것이 될 수 있다. 일부 엄선된 사람이나 단체만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지금의 남북교류협력 논의에서도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 그리고 중소기업들에게 더 큰 소외감을 느끼게 할 주장이다. 물론 기술을 가진 대기업들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게, 잘 가다듬어서 정책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


5. 남북이 함께하는 스트타업 (통일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


오랜동안 북한의 과학기술정책을 연구한 필자는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새로운 시대에 맞는, 과학기술을 통한 남북교류협력사업으로 뭐가 좋을까 토론해왔다. 북한의 기술발전 경로에 어긋나지 않고, 호혜평등 유무상통의 원칙에도 부합하면서, 상대적으로 문턱이 낮은 사업을 찾다가 ‘통일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을 구상해봤다.

우선 북한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자본력과 디자인 그리고 시장의 흐름에 대한 이해이라 생각했다. 상대적으로 북한의 기술력은 우수하다는 판단이었다. 그래서 남한의 자본과 마케팅 능력, 그리고 북한의 과학기술의 결합으로 방향을 잡았다.

자본주의 사회인 남한과 사회주의 사회인 북한이 만나서 새로운 사업을 하는 것은 시장 자체가 없는 상태에서 사람들의 필요를 감지하여 상품과 함께 시장까지 동시에 키워야 하는 스타트업이 비슷한 속성이라 판단했다. 결국 남북이 함께 스트타업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좀 더 조사를 해보니, 이스라엘에서 시작된 기술주도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이 ‘팁스TIPS’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고 나름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창업을 주도할 창업가, 이들을 지원, 육성하면서 공신력을 부여해주는 정부, 그리고 둘 사이를 연결해주고 창업을 성공으로 안내해줄 각 분야별 멘토(액셀러레이터)라는 3자 결합 방식에서 균형을 잘 맞춘 정책이라는 평가였다. 이를 토대로 통일분야로 확대하기 위한 조그만 조정을 더하고 남북교류협력기금을 활용할 수 있게 법을 수정한다면 훌륭한 ‘통일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이 될 수 있겠다 판단했다. 원래 있던 제도에 북한 분야, 즉 북한 기술을 활용하는 어려움에 대한 어드밴티지를 약간 더해주고, 대신 중소기업벤처 지원기금과 R&D자금에 덧붙여 남북교류협력기금을 자본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더욱 튼튼한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스타트업 관련 글을 읽다가 보면, 성공의 관건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만난다. 누구와 함께 할 것이냐, 어떤 사람이 모이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는 것이다. 남북교류협력도 마찬가지일 듯하다. 어떤 사업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일을 실행하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도와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다. 특히 스타트업에서는 젊은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가진 것은 많지 않지만 재능과 열정으로 어려움을 돌파하는 젊은 사람들이 남북교류협력에도 많이 뛰어들 수 있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통일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이고 이를 제일 먼저 개성공단에 만들어보자는 것이 최근 논의 단계이다.


6. 활발한 토론을 기대하며


민경태 박사를 직접 만나 토론해본 적은 없지만 화상회의 형식으로 잠시 만난 적은 있다. 지난 해, 해외에 있는 필자가 국내 토론회에서 화상으로 발표할 때, 청중으로 참석하여 필자에게 질문하여 필자가 대답한 것이 전부라서 아쉬울 따름이다. 당시 필자가 처음으로 ‘통일 스타트업(Uni-TIPS)’ 프로그램을 발표했는데 민경태 박사는 “북한의 과학기술을 검증할 수 있는 수준이 되는 곳은 중소기업이 아니라 대기업이다. 왜 과학기술 교류를 말하면서 스타트업, 중소기업을 말하는가"라는 질문을 하였다. 이에 필자는 “과학기술은 대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다,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도 다양한 형태로 필요한 만큼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사업에 필요한 기술은 반드시 최첨단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대기업은 자체 자본과 기술로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을테니 정부차원의 지원을 해줄 필요는 없다고 본다. 반면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은 자본력이 약하니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는 대답을 했다. 시간과 형식의 한계로 토론이 이어지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이 글은 그때 이어지지 못한 토론의 연장선 같다. 아이디어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여러 사람들과 토론하면서 가다듬어야 좋은 정책이 되고 실행력을 갖출 수 있다. 남북 교류협력이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서로 머리를 모으고 마음을 모으고 있는 것이니, 오늘의 반론이 실제 토론으로 이어져 좋은 정책을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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