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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상록

2. 북 과학기술계의 초석, 월북 과학기술자 북 과학기술계의 초석, 월북 과학기술자 강호제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소장) 1947년 어느 날, ‘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안(국대안)’ 파동으로 인해 경성대학 교수직을 던지고 고향인 전남 담양에 내려와 있던 리승기에게 북에서 사람이 내려왔다. “리 선생, 이번에 고생 많이 하셨다는 소식 듣고 찾아왔습니다. 선생과 같이 유능한 과학자가 연구에 매진하지 못하고 후학 양성에도 힘쓰지 못하고 계시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어쩌겠습니까, 제 능력과 신망이 이정도 뿐인 것을...” “리 선생, 그래도 계속 이곳에 남아 계실 겁니까? 북으로 갑시다. 그곳에서 편안하게 연구하면서 제자를 길러냅시다. 그리고 선생이 개발한 비날론을 공업화해서 우리 인민들이 따뜻하고 예쁜 옷을 부족함 없이 맘껏 입을.. 더보기
12. 제대로 밝히는 북한 핵물리학(원자력 연구)의 역사 의외로 사람들이 '역사'를 좋아하시는건요? 아니면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적폐를 현실보다 역사적 맥락에서 찾아야 한다는 인식이 퍼진건가요? 그제 올린 '북한 기계공업의 역사'라는 글을 읽으려고 블로그에 접속한 분이 1000명을 훌쩍 넘겨버렸네요. (역대 최고 접속율이네요.) 2007년 박사학위를 받고, 북한 과학기술사 전공자로 전업하려고(? 지금은? --;)기관의 장을 만나뵙고 인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 분께 박사학위 논문을 보여드리니, 정말 약 5~10초 가량, 제목을 들으면서 표지를 훑어보시고곧바로, 옆에 있던 탁자에 논문을 내려놓으시면서이제 옛날 이야기는 그만하고 요즘 이야기를 해야지...라고 하던 장면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는 많은 분들이 옛날 이야기말고 요즘 이야기를 해달라고 해서200.. 더보기
3. 도상록-북한핵물리학의 아버지 도상록-북한핵물리학의 아버지 강호제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소장(협)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소장 1946년 여름, 김일성은 남에서 어렵게 모셔온 과학자들을 만났다. “다들 어려운 걸음 하셨습니다. 앞으로 우리 민족의 경제가 빨리 클 수 있으려면 과학기술의 힘이 필요합니다. 함께 열심히 해봅시다.” “남에서는 미군정이 저희 같은 과학자들을 배척하고 있는데 북에서는 저희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해서 많은 고민 끝에 올라왔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정말 잘 오셨습니다. 현재 북에는 일제 시기 건설된 각종 공장과 생산시설들이 많이 있는데 작동을 못 하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일제가 도망가면서 고장낸 것을 고치지 못한 것도 많고 기술자가 부족하여 어떻게 작동시켜야 할지 몰라서 운영을 못하고 있는 것도 많지요... 더보기
(민족21 2010년 6월호) 에피소드로 본 北 과학사 인물열전 ④ 도상록 (민족21 2010년 6월호) 에피소드로 본 北 과학사 인물열전 ④ 도상록 강호제 핵물리학의 아버지 도상록 1946년 여름, 김일성은 남에서 어렵게 오셔온 과학자들을 만났다. “다들 어려운 걸음 하셨습니다. 앞으로 우리 민족의 경제가 빨리 클 수 있으려면 과학기술의 힘이 필요합니다. 함께 열심히 해봅시다.” “남에서는 미군정이 저희 같은 과학자들을 배척하고 있는데 북에서는 저희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해서 많은 고민 끝에 올라왔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정말 잘 오셨습니다. 현재 북에는 일제 시기 건설된 각종 공장과 생산시설들이 많이 있는데 작동을 못 하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일제가 도망가면서 고장낸 것을 고치지 못한 것도 많고 기술자가 부족하여 어떻게 작동시켜야 할지 몰라서 운영을 못하고 있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