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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동향 브리핑(이대 통일학연구원)

위키리크스와 북한 전문가의 역할 ( 2010년 12월 06일 ~ 2010년 12월 12일 )


뉴턴이 정립한 물리학, 즉 역학체계는 결정론적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 즉 초기조건과 이들 조건이 맺는 관계식을 알 수 있으면 미래의 어떤 시점의 상황이라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다. 이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밀고나간 뉴턴은 ‘초기 물체의 운동속도’와 앞으로 운동이 변화할 정도에 해당하는 ‘가속도’, 그리고 힘과 운동 사이의 관계식에 해당하는 ‘운동방정식’으로 물체의 운동을 정확하게 예측하는(기술하는) 체계를 만들어내었던 것이다. 북한 연구를 이것과 연관시켜 보면, 북한 전문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좀 더 명확해진다.

뉴턴 역학처럼 북한의 변화를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북한과 관련한 초기조건과 관계식을 알아야 할 것이다. 초기조건이라고 하면 북한과 관련한 정확한 정보에 해당할 것이고, 관계식이라는 것은 이러한 정보들이 어떻게 취사선택되고 어떻게 관계 맺는지에 대한 내용이 될 것이다.

북한과 같이, 스스로 정보를 철저하게 통제하는 경우 최대한 사실에 부합되는 정보를 확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선은 1차 자료를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렇게 확보된 1차 자료도 상호검증을 거쳐 철저히 걸러내야 한다. 또한 다양한 2차 자료들에서도 북한 상황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이 있을 수 있으므로 이를 잘 검토하여야 한다. 특히 최근 혹은 고급 정보일수록 문헌 자료보다 인적 자료가 더 많으므로 각종 정보를 잘 확보하는 일은 비용과 위험의 부담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따라서 개별 연구자보다는 조직이나 기관에 속한 사람들이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이다.

반면, 정보들 사이의 관계를 찾아내는 일은 문헌을 기본으로 삼는 연구자들이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정보들 사이의 관계란 그 사회의 지향, 가치, 작동방식 등과 관련된 것이므로 역사적 경과 속에서 드러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오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북한 사회의 움직임을 자세히 살펴야만 인식할 수 있다.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보다, 그리고 단편 지식에 집중하는 일에 매달리기보다 북한 역사 전체를 염두에 둘 수 있고 다양한 관계를 볼 수 있어야 찾아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정보들 사이의 관계식이라 할 수 있다. 북한 전문가라고 한다면 바로 이런 흐름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을 말할 것이다.

최근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자료들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북한과 관련한 부분에서는 정부 당국자들의 인식 수준 및 상태를 엿볼 수 있는 것들이 많이 공개되었다. 문제는 이런 과정을 통해 드러난 북한 관련 정책적 판단이 아직 정보 확보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북한 사회를 움직이는 관계식을 찾아 확보된 정보들을 새롭게 조립하는 수준에는 많이 못 미치고 있다. 아니 북한의 흐름을 읽고 있는 전문가들은 많으나 정책의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혹은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이 적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북한 사회의 일련의 변화들에 대해 당황해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너무 많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 정책이 이러한 북한의 변화와 상관없이 진행되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만일 북한 사회가 일정한 흐름 없이 무질서하고 임의성이 강하다면 단순한 정보/첩보 확보가 가장 중요한 일이겠지만 최근 빅터 차도 ‘북한 관련 5가지 오해’라고 하면서 강조한 것처럼 북한 사회의 움직임은 일반적이지 않을 뿐이지 나름의 일정한 흐름이 있다. 이성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흐름이 있다는 것이다. 일련의 흐름을 우리의 관심사에 맞게 임의로 재단할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근거를 바탕으로 그 흐름 자체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북한 전문가라면 각자 하나 이상의 흐름(관계식)을 발견한 사람이어야 하고 마땅히 이렇게 발견한 결과를 공유하면서 북한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에는 첩보에 의해 수집한 정보도 바탕이 되어야 할테지만 다양한 북한 전문가들이 찾은 관계식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 과정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북한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관계식을 찾기보다 첩보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듯하다. 아니 ‘관계식을 찾은 사람’보다 ‘첩보를 확보하고 있는 사람’을 북한 전문가라고 부르는 상황이 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