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의 독자노선 시작은 1952년부터



강호제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소장)



19521229, 과학원 임시청사 회의실에서 2회 과학원 상무위원회가 열렸다. 과학원은 121일에 공식적으로 개원하여 업무를 시작하였지만 급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한 달도 채 안 되어 조직 변경에 대한 중요한 안건이 생겨 급히 소집된 회의였다. 과학원 초대원장은 지식인들 중에서 가장 명망이 높았고 직책이 높았던 홍명희가 맡고 있었다.


 

오늘 안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원 소속 연구소를 하나 더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8개의 연구소를 갖고 있습니다만 여기에 추가로 공학연구소를 설립하자는 의견이 긴급하게 생겼습니다. 현재 자연과학 분야는 물리수학연구소와 화학연구소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전략에 비추어보면 화학연구소에서 담당하기로 했던 금속학과 기계, 전기, 건설 부문 등의 비중이 매우 커질 것이므로 별도의 연구소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우선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여건이 되겠습니까? 이번에 8개 연구소를 내오는 것만으로도 아주 힘들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연구소를 하나 더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텐데요.”


이 부분은 화학연구소 조직 구성에 대해 논의할 때 이미 결론이 난 것 아닌가요? 과학원에서는 물리, 화학, 수학 등 기초과학 연구를 수행하고 생산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연구는 각 생산성 산하 연구소들에서 수행하기로 당시에 원칙을 정했습니다. 다만 분야들 사이의 연계를 위해 화학연구소 안에 작은 연구실 정도를 설치하기로 결정하였지요.”


그렇지요. 과학원 안에 별도의 연구소를 두어 공학연구를 수행하게 되면 조직 구성원리가 무너지게 됩니다. 과학원과 생산성 산하 연구소의 구분이라는 기본 원리를 흔드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잠시만요, 그 조직 구성원리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소련의 조직 구성원리가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맹목적으로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선진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의 것을 배우는 것은 좋지만 우리 조선의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지요. 우리나라 경제를 급속히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공업 부문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러자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과학기술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현재 과학원 조직 구성을 보면 이 부문이 너무 약합니다.”


맞습니다. 전국의 생산현장, 특히 산업현장에서는 과학기술적 지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형편인데 이를 생산성 산하 연구소에만 맡겨둘 수 없는 것이죠. 중앙 과학기술 기관인 우리 과학원에서 이를 적극 책임져야 합니다. 특히 열악한 상황에서 제대로 일을 하려면 선택과 집중을 잘하여야 하는데, 공학부문에 대한 과학기술 연구역량을 과학원에 집결시키는 편이 더 좋겠다는 겁니다. 소련식의 창조적 적용인 셈이죠.”



36년간 일제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해방 이후 북에서 일본의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해방 이후 소련쪽으로 바뀌었다. 북 주둔군으로 소련군이 들어왔고 소련과 같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지도부가 새롭게 들어섰기 때문에 소련식이란 절대적 기준이었다. 이후 1950년대를 거치면서 북 지도부는 독자노선을 강력하게 추구하기 시작하였지만 정치는 물론 사회 전 영역에서 제대로 독자노선의 내용이 채워진 것은 1960년대 이후의 일이다. 정치에서 북이 소련식을 거부하고 독자노선을 내세우기 시작한 것은 1956년경, 15개년계획을 입안할 때부터라고 하지만 제대로 자주, 자립, 자위, 주체라는 내용이 공식적으로 천명된 것은 1965년경이다.


과학기술계도 마찬가지였다. 해방 직후 북에서 대학을 설립, 운영하고 과학연구기관을 세우는 데에 소련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소련으로부터 받은 4만 여 권의 책과 각종 실험도구 2600여 점, 도표 2200여 점은 김일성종합대학 기틀을 잡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1948721일에 파견된 소련학자 일행은 대학운영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었다. 세계적인 생물학자 오파린(A. I. Oparin)을 단장으로 하는 소련학자 일행은 석 달 동안 머물면서 각종 강연과 토론회를 개최하였고 각 대학의 실험기구 설치 및 교수강령 작성을 도와주었다. 게다가 1952년 과학원 설립 초기에 과학원의 이름을 과학 아카데미라고 부를 정도로 소련 과학원을 공식적으로 모델로 삼았다. 처음에 의학부, 농학부, 공학부까지 포함하여 개교한 김일성종합대학이 이후 이들 학부를 단과대학으로 독립시켜 기초연구 중심의 종합대학과 응용과학 중심의 단과대학 체계로 바뀐 것이나 전문 연구활동 중심의 과학원과 기술지원활동 중심의 생산선 산하 연구소로 과학연구기관이 이원화된 것도 모두 소련식을 모방한 결과였다.


이처럼 소련식을 그대로 모방하던 과학기술계 분위기가 자립화로 선회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1952년 말이었다. 전문 과학연구활동을 담당할 과학원 산하에 공학연구소를 설치한 것과 생산 현장에 대한 지원활동에 과학원이 계속 참가한 것은 북 현실에 맞는 과학기술 정책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의 일부였다.


그런데 북이 소련의 영향을 명시적으로 거부하기 시작한 것은 1957년 말부터였다. 소련의 도움에 거의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작성하고 있던 과학발전 10개년 전망계획(1957-1966)’을 전면적으로 수정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에 소련 정부도 1957년 말부터 과학기술 지원단을 철수시킨 뒤 더 이상 파견하지 않았다. 북 지도부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과학원 구성원들을 생산현장으로 직접 파견하여 현장에서 커지고 있던 기술지원활동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기로 하였다. 이는 현지연구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구체화되어 19581월부터 시행되었다. 다른 영역과 달리 과학기술계의 독자노선은 1950년대 말에 이미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었다.


물론 과학기술 활동의 독자노선화는 세계 과학기술계의 흐름과 동떨어져 뒤쳐질 수 있는 위험이 따르는 일이다. 다른 나라와 활발한 교류협력을 통하지 않는다면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오랜 기간의 봉쇄정책 속에서도 두 차례에 걸쳐 핵시험과 인공위성 발사시험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을 자체적으로 개발, 보유할 수 있게도 하였다. 비록 다른 부문의 희생이 더 컸겠지만.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있으므로 섣불리 맞고 거름을 판단내리기 어렵지만 이런 것이 다른 나라와 다른 북 과학기술 정책의 특징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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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과학기술 활동의 중심, 과학원 설립



강호제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소장)



1952427일 평양의 모란봉 지하극장에 약 400여 명의 과학기술자들이 모여들었다. 두 번째 전국 규모의 과학기술자 대회가 3일에 걸쳐 개최되었기 때문이다. 개막 연설을 통해 김일성은 자신의 과학기술 정책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밝혔다.

 

동무들, 우리나라 경제는 미군의 폭격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파괴, 낙후되었습니다. 조만간 전쟁이 끝나게 되면 우리는 대대적인 전후복구사업과 함께 경제건설사업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공업화 수준을 높여 빠른 시일 내에 사회주의 공업국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자면 여러분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과학기술의 뒷받침 없는 공업화는 불가능하니까요.

제가 앞에서 말씀드린 과학기술 정책에 대해 이번 대회기간 동안 토론을 활발하게 진행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어떻게 하면 과학기술을 효과적으로 발전시킬 것인지, 경제발전에 도움을 주기 위해 선택과 집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깊이 토론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흩어져있는 과학기술자들이 한 데 모여 집체적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과학원을 설립할 방안을 더욱 구체화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국가계획위원회의 과학연구국이 과학기술 정책을 담당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과학기술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제한되고 다른 기관들과 협력해서 일하기에도 부적절한 상태입니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과학기술자들을 한 데 모여 힘차게 일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 활동의 중심인 과학원을 별도로 세워야겠습니다.”

 

실 과학원과 같은 중앙집권화된 과학기술 연구기관을 세우자는 김일성의 제안은 처음이 아니었다. 19472월에 설립된 북조선 중앙연구소가 첫 시도였는데 실제 연구를 담당할 과학기술자가 부족하여 6개월 만에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후 5년 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과학기술자를 확보하여 당시 구상을 실현할 바탕이 마련되었다는 판단이 섰기에 김일성이 다시 한 번 과학원 설립을 제안했다.


이번 제안에서 김일성이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소련 과학원이었다. 195257일 창립준비위원회를 구성할 때까지 과학원의 이름은 소련 과학원의 이름을 그대로 베낀 조선과학아카데미였는데 같은 해 12월 정식으로 개원할 때 비로소 과학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북조선 중앙연구소는 일제가 남긴 유산을 바탕으로 꾸려졌던 반면, 새로 설립되는 과학원은 소련의 지원을 바탕으로 소련식 과학연구기관으로 만들어졌던 셈이다. 소련의 과학기술 체계는 교육기관부터 이원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종합대학과 분과별 대학이 분리된 것처럼 과학원은 전문연구활동을 담당하고 분야별 기술지원활동은 각 생산성에 설치된 연구소들이 담당하는 구조였다. 따라서 설립 초기 과학원은 생산현장에 대한 기술지원활동은 염두에 두지 않고 국가적 단위의 연구활동에만 매진하는 형태로 계획되었다.


과학원은 과학기술 관련 모든 일을 담당하기 때문에 우리로 치면 행정기관인 과학기술부, 연구기관인 정부출연연구소, 교육기관인 KAIST, 원로 과학기술자 모임인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을 통합시킨 조직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과학원 창립 당시 분야별 중심 과학기술자들에게 원사, 후보원사의 칭호를 부여했고 3개의 부문별 위원회(자연 및 기술과학/의학 및 농학/사회과학)을 꾸렸으며 모두 8개의 연구소(물리수학/화학/의학/농학/역사/물질문화사/경제법학/조선어·조선문학)를 설치했다. 원사의 80% (8/10), 후보원사의 60% (9/15)가 월북한 사람들이었을 정도로 지난 시기 과학기술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취했던 다양한 노력 중에서 월북유도사업은 가장 효과적이었다.


북은 소련의 과학원을 그대로 베끼고 따라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과학원의 경우 설립 초기부터 북의 스타일대로 변형되었다. 우선 기술지원활동을 생산성 산하 연구소들에게만 맡기지 않고 과학원이 직접 생산현장에 뛰어들어 현장중심의 과학기술 정책을 수립, 집행해나갔다. 이는 이후 현지연구사업이라는 독특한 북의 과학기술정책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리고 소련 과학원에 없는 공학연구가 새롭게 추가되었는데 이는 학술적이고 원론적인 연구에만 치중하지 않고 현장 중심의 실용적인 연구에도 집중하려던 의도였다. 기초과학을 강조하는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 달리, 응용과학을 강조하는 북 스타일이 생겨난 흐름이었다. 특히 북 방식의 변용인 공학연구소1950년대 말 15개년계획 기간 동안 가장 많은 성과(비날론, 염화비닐, 합성고무, 코크스 없는 제철법 등)를 내면서 북 지도부가 독자노선, 자립경제노선을 추구하는 데 자신감을 높여주었다.


전쟁이 채 끝나기 전인 1952년에 설립된 과학원은 이후 3년 동안 내실을 다져 본격적인 경제발전 계획이 추진된 1957년부터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따라서 당시 북 경제가 급격하게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처럼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한 과학기술계의 지원이 있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천리마운동이 흔히 이야기되는 것처럼 단순한(혹은 무식한?) 노력동원식 대중운동이었다는 평가는 이러한 과학기술계의 움직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과이다.


과학기술계를 중심으로 경제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과학원은 1960년대 초반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거쳐 과학원은 과학기술계만으로 재조직되었고 의학, 농학, 사회과학 등 다른 분과들은 독립하여 별도의 과학원 체계를 구성하였다. 오늘날 과학원은 예산편성권까지 확보하여 과학기술 활동과 관련한 모든 권한을 갖고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강성대국 건설을 위한 핵심 전략으로 과학기술, 특히 국방과학기술을 앞세운 경제발전전략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므로 국가과학원과 제2자연과학원(국방과학기술 담당)의 활동은 북 경제활동의 최중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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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과학기술계의 초석, 월북 과학기술자



강호제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소장)



1947년 어느 날, ‘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안(국대안)’ 파동으로 인해 경성대학 교수직을 던지고 고향인 전남 담양에 내려와 있던 리승기에게 북에서 사람이 내려왔다.


 

리 선생, 이번에 고생 많이 하셨다는 소식 듣고 찾아왔습니다. 선생과 같이 유능한 과학자가 연구에 매진하지 못하고 후학 양성에도 힘쓰지 못하고 계시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어쩌겠습니까, 제 능력과 신망이 이정도 뿐인 것을...”


리 선생, 그래도 계속 이곳에 남아 계실 겁니까? 북으로 갑시다. 그곳에서 편안하게 연구하면서 제자를 길러냅시다. 그리고 선생이 개발한 비날론을 공업화해서 우리 인민들이 따뜻하고 예쁜 옷을 부족함 없이 맘껏 입을 수 있게 만들어줍시다.”


저를 높이 평가하여 이런 큰 제안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직 저는 여기서 할 일이 많습니다. 제가 가르치던 제자들이 이곳 담양으로 내려와 공부할 수 있게 해달라는 연락도 받았습니다. 저를 믿고 따르는 제자가 아직 많습니다. 게다가 제 식구들이 모두 이곳에 있습니다.”


그래도 과학기술을 홀대하면서 지원도 제대로 해주지 않는 미군정을 어떻게 믿습니까? 우리 북에서는 인민위원회 차원에서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와 함께 갑시다.”


북도 남도 모두 제 조국입니다. 여기서도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일들이 많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벌여놓은 일들도 아직 많습니다. 제가 갈 생각이었으면 저번에 려경구 선생이 올라갈 때 벌써 따라 나섰겠지요. 미안합니다.”


리 선생, 우리는 선생의 재능과 이상을 높이 삽니다. 그리고 우리는 선생의 그러한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 바로 조선이 잘 사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선생의 식솔은 물론 제자들도 함께 오세요. 과학기술적 재능을 가지고 우리와 이상이 같은 사람이라면 우리는 누구라도 환영입니다. 여건이 안 되는 이곳에서 선생과 제자들의 재능을 썩히지 말고 우리와 함께 합시다.”


미안합니다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가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좋습니다. 생각을 충분히 해보시되 최대한 빨리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그리고 구체적인 요구사항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최대한 들어 드릴테니...”


 

현대 사회는 과학기술 발전 없이 경제가 발전할 수 없는 사회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일제 식민 지배를 받은 조선에는 과학기술 발전을 담당할 과학기술자가 태부족하였다. 일제는 조선인이 고등교육을 받는 것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았고 특히 조선인이 과학기술 관련 교육을 받는 것을 싫어하였다. 식민 조선 내에는 과학기술 관련 교육기관이 거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과 일본의 학제를 이상하게 비틀어 조선인이 일본에 있는 고등교육기관에 입학하는 것을 힘들게 만들었다. 교묘하게 민족적 차별 정책을 추진하여 조선인에게서 교육의 기회를 박탈한 것이었다.

그 결과 1945년 해방 당시 남북 통틀어 대학을 졸업한 고급 과학기술자는 400여명 밖에 되지 않았다. 그 중에서 북에 남아 있던 고급 과학기술자는 10여명에 불과하였다. 따라서 북 지도부는 과학기술 인력을 양성, 확보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시간도 짧게 걸리고 효과도 큰 이남 지역에 머물고 있던 고급 과학기술자들을 북으로 유치하는 사업에 공을 많이 들였다.


과학기술자 월북 유도사업은 포섭대상자와 친분이 있는 고급 과학기술자가 직접 내려와 실행하였다. 그들은 북 최고 지도자의 위임장을 갖고 다니면서 각종 지원 제안의 담보로 활용하였다. 대부분의 고급 과학기술자들은 부르주아 계급 출신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신분에 대한 불안감을 불식시키기 위해 최고 지도자의 약속을 제시한 것이었다. 또한 과학기술 연구 활동은 자원도 충분히 확보되어야 함은 물론 자금과 인력도 많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지원이 이루어지려면 중앙 차원의 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 대한 보장을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라도 김일성의 위임장이 필요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학기술자들은 대학 교수 직책을 상당히 선호하면서 연구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진 실험실 혹은 시험장을 갖고 싶어 했다. 당시 월북 과학기술자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북 지도부는 김일성종합대학과 여기서 분화해 나온 평양공업대학과 사리원농업대학, 평양의학대학을 일찍부터 만들어나갔다. 1947년에는 흥남화학공업대학을 새로 설립하기까지 하였고 대학의 초기 교수진 중 상당수가 월북 과학기술자로 채워졌다.


또한 월북한 과학기술자들에게는 풍족한 생활환경을 보장해주었고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안전한 후방으로 먼저 이동시켜 주었다. 또한 전쟁 시기에도 연구가 중단되지 않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전선이 휴전선 근처로 고착화되기 시작한 1951년 중순부터 대학을 비롯한 각종 연구기관 및 연구기관들은 정상화되기 시작하였다. 1952년에는 산발적으로 진행되던 과학기술 연구활동을 총괄하기 위해 북 최대, 최고의 과학기술 관련 조직인 과학원이 설립되었다. 이때까지 중단되지 않고 수행되었던 연구들은 1950년대 말에 꽃을 피운다. 당시 경제성장 속도를 더욱 높여주었던 다양한 기술혁신이 가능했던 이유였다.


이러한 다양한 지원책을 앞세운 월북 유도사업은 남의 배척력에 의해 더욱 탄력을 받으면서 진행되었다. 당시 미군정청은 자신들의 정책에 비판적이던 대학교수들을 배제하기 위해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안을 만들어 시행하였다. 이는 서울 시내에 소재하던 각종 단과대학들을 묶어 서울대학교로 만드는 것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미군정은 교수 재임용 심사를 통해 자신들의 정책에 비판적이던 교수들을 대거 탈락시켜버렸다. 또한 중앙 차원에서 과학기술 활동을 지원하는 기관도 제대로 만들지 않았다. 심지어 연구 설비가 잘 갖추어져 있던 서울 공대 실험실을 미군정에서 사용한다는 짧은 통보만으로 며칠 만에 빼앗기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설비와 기록들이 유실되기도 하였다.


남의 척력과 북의 인력이 잘 배합된 결과, 북은 상당수의 고급 과학기술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1946년부터 끈질기게 진행된 월북 유도사업을 계속 거부하던 리승기도 전쟁이 일어난 직후인 1950년대  7월에 서울에서 남으로 피난가지 않고 결국 월북 대열에 끼어들었다. 게다가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까지 함께 데리고 월북하였다. ‘리승기 세력의 월북이라고 불릴 정도로 화학공업 분야의 최고 엘리트 과학기술 집단의 월북은 일제가 건설해두었던 각종 화학공업 설비들을 제대로 가동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해방 전 여순공대에서 교수로 있다가 해방 직후 스스로 귀국하여 경성대 물리학과를 정상화하는 데 앞장섰던 도상록 역시 동료 및 제자들과 함께 월북하여 북 물리학계를 이끌었다. 북에서 핵관련 연구와 반도체 연구 등이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진행될 수 있는 기반이 이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월북 과학기술자들 중에는 리승기나 도상록 등과 같이 학문 내적인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한 사람도 있었고, 과학기술 정책과 경제 정책을 수립, 추진하는 데 핵심적인 일을 수행한 사람들도 있었다. 북이 일찍부터 중공업 우선정책을 추진하였으므로 이에 대한 과학기술적 내용까지 잘 아는 과학기술자들이 정책의 이해도나 기획력, 추진력이 높았기 때문에 중히 기용되었던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강영창, 김두삼, 오동욱, 로태석 등이다. 이들은 천리마운동 시기 금속공업상, 로동당 중공업부장, 과학원 원장,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화학공업상 등을 역임하였다. 북 경제 성장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던 시기, 경제의 핵심 분야에서 활동하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파악된 월북 과학기술자, 그것도 대학 졸업 수준 이상의 과학기술자 수는 111명 정도이다. 인원수가 불과 4~5년 만에 10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그 결과 1952년 과학원이 설립될 당시, 최고 수준의 학자를 일컫는 원사칭호를 받은 사람 10명 중에서 8명이 월북한 사람들이었고, 그 다음으로 높은 칭호인 후보원사를 받은 15명 중에 9명이 월북한 사람들이었다. 북 과학기술계 최고 원로 대부분이 월북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결국 북 과학기술계는 월북한 과학기술자들에 의해 초석이 놓여 졌고 그들에 의해 고등 교육기관과 연구기관이 정상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들에 대한 지원을 아까지 않은 결과 1950년대 말에 이르러 북의 과학기술 수준은 상당한 수준에 올라설 수 있었고 비날론, 염화비닐, 갈섬유, 무연탄 가스화, 함철콕스, 합성고무 등을 공업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 기술혁신을 바탕으로 하는 경제발전전략이 수립되고 실행될 수 있었다





Posted by 세상일기

최근 북한은 과학기술을 앞세워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전략을, 경제발전에 총력을 집중한다는 전략을 채택하였다. (2018.4.20)


그러면서 과학기술과 교육을 더욱 신경 쓰자고 했는데, 


최근에 공부하다가 보니, 

북한이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경제발전을 추진하기 위한 준비가 예상보다 많이 진척되었다고 느꼈다. 

 

스스로 북한의 흐름을 많이 알고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반성했다. 그것도 2번이나.... ㅜㅜ


최근에 내가 알게 된 흐름을 대략 정리해보면, 


- 쓸만한 기술을 모으고 정리하는 작업이 상당히 이루어지고 있다. 특허/발명 중에서도 경쟁력 있는 것을 추리는 작업이 진행된다는 것은 기존의 기술들이 정리되고 있는 상태이고, 여기에 더해서 다시 재평가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거라 볼 수 있다.


- 기술 인력들의 재배치, 현장으로 적극 진출 등이 좀 더 구체화되고 있다. 중요 대학들이 이를 위한 새로운 준비를 하고 있다.


- 군수 관련 기술들이 민수로 이전되는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군수의 민수 전환' 이것이 김정일 시대에서 김정은 시대까지 이어져오는 경제발전 전략이다.


- 기술 주도 기업(?) 들이 상당히 많이 생겨났다. 게다가 기술의 사업화를 위한 제도적 정비도 어느 정도 진행하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평양에는 스타트업을 위한 센터 같은 공간도 생겼고, 스타트업이라 부를 만한 기술 기업이 10여곳 생겨서 운영되고 있다는 소식도 있다. 


- 특구가 '기술개발구'로 일반화, 전국화되면서 최근 20여개가 마련되었다. 

북한의 지향은 모든 기술개발구가 '과학기술'을 활용하는 첨단 과학기술 개발구가 되자는 거다. 

지금은 은정첨단기술개발구가 평양에 한 곳 지정되었을 뿐이지만만,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 


- 말 그대로, 산(생산현장), 학(대학, 학교), 연(연구소), 그리고 제도적 뒷받침까지 모든 영역에서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하여 산업을, 대외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정책과 실천이 보인다. 


(그런데 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안 하니, 나라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지만... 사는게.... ㅜㅜ)

Posted by woojuri

<얼굴인식기술 남북경협 사업가 김호의 기술을 활용한 남북교류협력의 활용 사례>


'북한의 기술로 창업하자'는 주제로 워크샵을 준비하면서 구체적인 사례를 만들어봤습니다.

먼저,
북한의 각종 A.I기술 즉 문서인식, 음성인식, 얼굴인식 A.I.를 활용하면
최근 세계 가전제품 시장에서 가장 핵심 분야인 스마트 홈, 스마트 시티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북한의 A.I.기술은 아주 쓸만하다고 들었습니다.)
여기서 얼굴인식 A.I. 영역에 김호의 얼굴인식기술이 들어갈 수 있는 거지요. 
(실제로 디지털 도어락에 이 기술을 넣은 제품도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종이공학연구소에서 세균까지 막을 수 있는 특수 필터를 개발했다는 소식(이 연구소 소장은 이러한 성과들을 바탕으로 2017 최우수 과학자, 기술자로 선정되었지요.)을 듣고 미세먼지에 대한 대안으로 공기청정기를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둘을 합쳐, 
북한 기술만으로 공기청정기를 중심에 둔, 스마트 홈 시스템을 구성했지요.

한번 보시고 품평을 해주세요. (쓸만하다고 생각하면 펀딩도 ^^)

김호의 기술은, 억지를 써서라도 막을만 한 것이었을까요?




그리고 이 건,

북한 기술로 창업하기의 사례로 만든
인공지능 기능과 결합된 공기청정기
PPT 자료입니다.

북한의 어디서 이런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지 나옵니다.







Posted by woojuri

                     그들이 막는 곳에 길이 있다. 



4.27 판문점 선언, 6.12 조미 회담이후 모두들 꿈에 취해 있었다. 

남북이, 조미가 벌써 화해와 평화의 시대로 넘어갔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진행된 각종 세미나와 토론회에서 화해, 평화를 넘어 경제협력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준비 안 된 상태에서 여러 말들을 하게 되니

수준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남북을 포괄한 큰 그림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되는 일들을 찾아내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가 꿈꾸는, 혹은 욕망하는 것만 이야기했다. 

남북 경제협력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말 속에서 

약탈자의 시선이 느껴졌다. 

식민지를 만들어 경영하던 일제의 선전문구를 보는 듯한 인상을 많이 받았다. 


북한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들의 경제발전이 어떻게 수립되어 있는지는 별로 관심 없고

북한에 매장된 값비싼 자원, 그리고 북을 통해 들어오는 값싼 석유/가스,

북한의 싼 노동력...

모두 거저 가져올 수 있는 것들인양, 

빈 종이에 자기들 욕망을 쏟아냈다. 


북한의 과학기술 역사를, 경제발전 전략을 공부해온 나로선

이런 모든 이야기들이 불편했다. 

북은 남북이 꽉 막혔던 작년에도

남북이 새롭게 만나서 이야기하고 협력할 수 있는 것은

'과학기술'이라고 거듭 말해왔는데 이를 귀담아 듣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누구는 이제 우리의 상상력이 유럽까지 이어진다, 우리를 가뒀던 족쇄가 풀린다고 마구 흥분하기도 하더라.

그런데 그들이 이야기하는 자유는, 

비행기 안 타고, 기차만 타고 유럽까지는 가는 수준이었다. 

북한의 자원을 우리 맘대로 마구 개발하는 수준이었다.


이게 최첨단인가?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인가?


러시아 가스관 연결이나 철로 연결은 족히 30년은 넘은 일이다. 

그게 뭔 새로운 생각이고, 

뭔 자유로운 상상력을 가져오나...


북한이 첨단 기술을 가졌다, 기계 기술과 정보통신 기술이 합쳐진 CNC가 나름 세계적 수준에 올랐다고 평가할 수 있다는 말만하면

북한의 선전내용을 그대로 베낀다는 평가들을 한다. 


북한이 무기를 만들던 기술로 이제는 생산자동화를 넘어 무인화를 만들면서 

컴퓨터로 생산을 통제하는 통합생산체계를 구축하는 일을 확장하고 있다고 하면, 

북한의 말과 비슷하다는 것만으로 여전히 고려 자체를 안 한다. 


북한이 인공지능(A.I)기술에서 나름 첨단을 달린다고 하면

허황된 이야기를 한다고 놀린다. 


남북이 부족한 자원을 서로 나누어 개발하고, 

서로 이용하지 못하던 철길이나 도로를 사이좋게 이용할 수 있는 것도

물론 좋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끝인가? 

충분히 예상 가능한, 관리 가능한 범위 내에서만 

교류협력을 해야 하나? 

그럴려고 철조망을 걷어내려하나?


남북의 교류협력은 

남들과 비교해서 우위에 있을 수 있는,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해야 

남북 경제 모두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그래야만 우리를 가두었던 상상력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다. 


북이 가진 최첨단 기술, 컴퓨터 기술의 최첨단 A.I기술, 

그 중에서고 가장 어렵다고 하는 안면인식(얼굴인식) 기술을 북이 개발했고

그런 기술을 가지고 

남한의 사업가가 어렵게 어렵게 상용화시키고 있는데

그것을 막아야 하는가?


누구도 생각못했던, 

북한의 AI기술을 가지고 세계 시장에서 당당히 겨뤄보겠다면서 10년을 버텨온 

남북경협의 첨단을 달리던 사람을 주저앉혀야 하나?

그것도 조만간 사라질 국가보안법으로?


말 그대로, 

북의 기술과 남한의 자본, 마케팅 능력이 결합되어 고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하여, 

이제 시장에서 평가받고, 수익을 거두려고 하는데 

그걸 막아야 하는가?

북을 적으로 규정하면서? (판사가 더 나쁘네...)


철도가 연결되어 시베리아로, 유럽으로 직접 갈 수 있게 될 때 우리의 상상력이 해방되는 게 아니라 

북한이 가지고 있는 첨단 기술을 가지고

우리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새로운 상품으로 승부를 내게 되어야 

해방되는거다.

 

어제 8.15 경축사에서 대통령이 좋은 말씀은 많이 하시더만.

그 중에서 내게 가장 꽂힌 말은 


"분단은 우리의 사고까지 분단시켰습니다.

많은 금기들이 자유로운 사고를 막았습니다."


지금 정부에서도 그런 자유로운 사고를 막고 있으면서 

마치 남탓하는 듯 여겨졌다. 

분단으로 유지되고 있는 국가보안법이 

우리의 상상력을,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데

지금 정부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마치 남 이야기하는 듯하여 짜증이 확 났다. 


아직도 반북 이데올로기에서 못 벗어난 사람들은,

이번 사건을 보고

"굳이 북한 사람들하고 사업을 했어야해?"

라는 말을 하겠지만,


제대로 된 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이번 일을 계기로, 

국가보안법의 폐해를 넘어

'북한이 가진 기술이 아주 쓸만한가보네. 저렇게 억지를 써가면서도 막으려고 하는거보니'

라는 말을 해야 한다. 


그들이 막는 곳에 길이 있다. 

그들이 눈독을 들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북한의 첨단 과학기술, 그 중에서도 쓸만한 것에 대해서는 미국도 이미 눈독 들이고 있다. 

돈벌 궁리도 하고 있지만, 

남북이 이를 매개로 협력하는 것을 막을 궁리도 하고 있다. (지난 5월 미국의 대학 연구소에서 북한의 인공지능 기술 등의 흐름을 조사하여 경고한 적이 있다. )

그러니 무리를 해서 막는 거지.


김호를 석방하고, 

자유로운 남북 교류협력을 막지말아야 한다. 

북한의 첨단 기술을 매개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그래야 산다.


http://m.minplus.or.kr/news/articleView.html?idxno=5801







Posted by woojuri

미 의회 도서관에서 북한 저널 제목/저자/키워드 검색 DB 오픈




미국에서 하니 뉴스가 되고, 미국에서 하니 용서가 되는 가봅니다. 


이미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은 자료, 즉 전 세계 각처에 있는 북한 자료들을 모아 DB로 만드는 작업을 10여년도 더 전에 시작했고 사업이 끝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공개는 안 되고 있지요.


이번에 미국 의회 도서관에서 만들었다는 DB는 

제목, 저자, 키워드 같은 서지 사항만 모은 겁니다. 

실물은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곳에 가야 하는 듯하네요. 


게다가 한글의 영문 변환이 우리나 북한에서 쓰는 것과 달라 어색하긴하네요.


그래도 이게 어딘가 싶습니다.


한번 방문해보세요.


http://memory.loc.gov/diglib/asian/html/nksip/nksip-home.html

Posted by woojuri

이런 건, 검색 프로그램으로 분류하여 평가할 것이 아니라, 북한 내부에서 '상품 카탈로그'가 만들어지고 개별 기업별로 유통되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평가하는 게 맞을 듯하다.


"건축재료에 따라 돌과 유리, 목재, 금속 및 수지, 건축용 페인트, 방수재료 등으로 구분하여 사용자가 제품에 대해 충분한 이해하고 사용방법과 구입경로"


게다가, 일반적인 카탈로그와 달리, 사용방법을 비롯한 풍부한 정보가 들어 있다는 것도 눈여겨볼 부분.


북한 내부에서 토목/건축 산업의 성장세가 뚜렷해졌음을 짐작하게 하는 흐름이다.


다른 분야들까지 이런 상품 카탈로그가 만들어지면, 북한 상품들의 대외 진출 흐름이 강해질 듯..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5419

Posted by woojuri

612 조미 정상회담 (단상2 : 트럼프마저도(?) 과학에 기반한 사고를 한다, 좀 배우자! )


트럼프는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과정, 조건들을 설명하면서 오랜 시간동안, 아주 자세하게, 세부적으로, 유명한 핵물리학자에게 배웠다고 이야기한다. 비논리, 충동적 사고의 대명사(?) 트럼프마저도 과학자와 충분한 토론을 거쳐 정책을 결정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정치권, 청와대는 이런 걸 하고 있을까? 과학자들이 열심히 이야기하면, 알겠다고 말만하고 '그래서 결론이 뭐야'라는 쌩뚱맞은 질문만 하는 거 아닐까? 


핵무기가 핵물리학이라는 '과학'적 지식에 기반한 것을 알면서도 과학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혹은 과학적인 것은 무시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주장하던 사람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은데...


북한의 핵능력, ICBM 능력 수준 등은 나처럼 학부 수준의 '일반 물리'만 알아도 대략 파악가능한 건데,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이 부분에 대해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건,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이거나 잘못 말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 때문일 듯하다. 


우리나라 정치권도 좀 배우자. 그리고 '과학적 사고'를 제대로 좀 하자. 

우리나라 과학자들도 정치적 발언을 하고 살자.


트럼프가 비핵화에 대해 이야기한 것 중에 새로웠던 것은

비핵화 과정이 전체 공정의 "20%"만 진척되어도 되돌릴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엄밀하게 말하면, 즉 과학적으로 말하면 되돌릴 수 없는게 어디있겠나? 하지만 이정도만 진척되어도 그 진정성을 확신할 수 있고, 상당 기간 핵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판단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자신의 임기(대략 6년) 안에 핵능력을 회복할 수 없는 수준?)


즉 핵물리학에 대한 특별 학습 이후 트럼프는 CVID가 불가능한 것을 알았고, 전체 공정의 20%만 되어도 나름 만족한다는 판단을 한 듯하다. 


비핵화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정치적 설정들을 넘어서기 위한 레토릭일 듯하다. 

CVID가 아니라 전체 공정의 20%만 해도 비핵화 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으니, 

비핵화하기 전에는 풀어주지 않겠다고 한 제재와 압박을 조만간 풀어줄 수도 있는 설정을 한 것이다. 


게다가 트럼프는 북한의 핵능력과 관련하여 과학에 기반한 상황인식을 하고 있다. 

정치적 해석의 영역이 아니라 객관적인 과학의 영역에서 북한의 핵능력을 파악했다. 

핵시험의 폭발력이 부족하다거나 ICBM의 재진입기술이 미흡하다는 등, 트집잡기 수준의 인식이 아니라 

명확히 ICBM을 포함한 '핵을 가진 국가'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희망적 사고보다는 명확한, 객관적 상황 인식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훌륭하다,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


이런 인식을 하고 있으니, 

핵시험장 폐쇄, 그리고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쇄가 얼마나 고마울까...

(고마운 마음을 고맙다고 표현할 줄 아는 트럼프... 또 한 번 박수.. ^^)


 


 



Posted by woojuri

612 조미 정상회담 (단상1 : CVID는 잊어라! )


드디어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만났다. 

만남 그 자체로 놀랍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정상들의 만남도 실시간으로 보았고, 트럼프의 기자회견도 실시간으로 보았다. 

트럼프!!! 이전과 다른 '탁월한' 미국 대통령이다. 충동적, 감정적, 비논리(?)의 대명사가 아니라 충분히 '이성적'이었다. 


- 단상 1 : CVID는 잊어라! 


이번 회담 직전까지 CVID를 모두들 연호하길래, 진짜 협상과정에 들어간 줄 알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지켜봤는데 역시나! CVID는 협상장 문턱에도 못들어갔다. 


사실 대부분의 북핵 관련 분석들은 9.19 합의에 어떤 내용이 들어갔고, 어떻게 협상이 깨어졌는지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 당시 협상을 담당했던 핵심 인물인 이종석 장관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CVID가 협상장에 들어가지 못함을 밝혔다. 

그는 미국에서 줄기차게 요구하던 CVID가 CC(complete and correct)로 바뀌면서 협상이 진행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실제 9.19합의문을 보더라도 CVID는 없다. 이거 아니면 절대 협상할 수 없다고 했던 부시마저도 막판에는 철회했던 것이다.


612 정상회담 직전까지 폼페오 등이 CVID를 거론한 것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협상용이 아니라 '국내용'일 뿐이다. 아니 그냥 미국 언론과 정치권의 요구일 뿐이다. 


요즘은 국내 언론에서도 CVID가 불가능한 요구조건이다, 굴욕적인 것이라는 의견도 많이 소개되고 있는데, 사실 '과학적/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물질적인 것도 그렇지만 비물질적인 것, 즉 프로그램이나 지식, 정보 등을 어떻게 비가역적으로 검증하면서 폐기할 수 있나? 이미 대입 시험에서 합격한 경험을 가진 사람에게 대입 합격에 필요한 정보를 모두 삭제하라, 그것도 비가역적으로 검증가능하게, 라고 요구할 수 없지 않나.


CVID는 원래 미국의 선전선동용이었다.(이 말을 북한이 아니라 미국에 대해 사용하니 이상하군) 협상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CC에서 '정확한(correct)' 이라는 말도, 주고 받을 '정보'가 있을 때나 필요한 것이지, 2008년에 핵활동 일지와 핵보고서를 이미 받아보았기에, 이제는 이것마저도 줄인 것 같다. 


'완벽하게(Complete)', 그냥 서로의 '요구(ICBM의 위협과 전쟁의 위협)'를 충실하게/완벽하게 충족시키는 정도면 된다는 것. 


트럼트는 그래서 CVID를 줄기차게 물어보는 기자들에게, 이미 그 내용이 충분히 들어있다, 혹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정도의 설명을 한 것이다. 


CVID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즉 물리적으로 어느 수준을 말하는 지 명확히 밝혀야 설득력을 갖는다. 그런데 CVID를 요구하는 주장에, '물리적' 조건이 붙어 있는 경우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니 혼자 주장할 때에는 할 수 있었지만, 상대방이 있을 때는 주장할 수 없었을 듯하다. 괜히 무식함만 들킬 수 있으니... ^^


트럼프는 '과학적'으로 검토한 결과 CVID가 성립 못함을 알았던 것 같다... (단상 2에서)










Posted by wooju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