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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2) 과학기술로 북한읽기 3

[202112-과학잡지 에피] 휴전선 앞에서 멈춘 과학적 지성 - 누리호와 은하호를 달리 보는 이유는?

[202112-과학잡지 에피 기고]

 

휴전선 앞에서 멈춘 과학적 지성 - 누리호와 은하호를 달리 보는 이유는?

 

강호제 (베를린자유대 한국학과 연구교수)

 

과학기술에도 국경이 있을까? 

과학기술의 객관성, 보편적인 특성을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이 질문은 너무도 당연하게 ‘아니다’라는 대답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사회적 구성이나 관찰의 이론 의존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선뜻 ‘아니다’라는 답을 하지 못한다. 누리호 발사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이 질문에 대해 간결하게 대답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공위성 개념은 아주 간단하다. 

높은 건물에서 돌멩이를 위로 던지면 적당히 날아가다가 결국 땅에 떨어진다. 지구 중력이 계속 당기고 있기 때문에 땅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구가 둥글다는 점을 잘 이용하면 돌멩이가 땅에 떨어지지 않고 계속 날게 할 수 있다. 돌멩이가 지구 중심방향으로 떨어지는 만큼 지표면도 휘어지게 되면 돌멩이는 영원히 땅에 닿을 수 없다. 달리 표현하면, 돌멩이가 중력을 받으면서 지표면 모양과 똑닮은 원궤도 위에서 운동하게 만들면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려면 돌멩이는 아주 빨라야 한다. 그 속도는 지구의 질량(M)과 반지름(R) 그리고 중력 상수(G)만 알면 쉽게 구할 수 있다. 최소 7.6km/s, 마하 23 가량이면 된다. 이를 ‘제1 우주속도’라고 부른다. 이를 처음 고안한 사람은 중력을 찾아낸 뉴턴이었다. 

인공위성을 빠른 속도로 날게 하는 방법도 뉴턴이 찾아낸 ‘작용 반작용의 법칙’을 이용한다. 두 물체가 서로 주고 받는 힘은 크기가 같고 방향이 정반대인 두 힘이 항상 동시에 작용한다는 이 법칙은 ‘운동량 보존법칙’이라고도 한다. 인공위성 발사체가 엔진에서 뿜어 나오는 기체를 밀어내는 힘과 크기가 같고 방향이 정반대인 힘에 의해 인공위성 발사체는 가속된다. 운동량은 질량(m)과 속도(v)의 곱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기체의 분출 속도가 빠를수록 인공위성은 더 큰 힘을 받으면서 가속된다. 엔진의 추진력이 일정하더라도 인공위성 발사체에 실린 연료가 점차 줄어들기 때문에 인공위성의 가속도는 점점 더 커진다. 결국 인공위성의 속도는 아래로 볼록한 그래프를 그리면서 점점 더 빨라진다. 

운동량의 변화는 또한 힘(F)과 시간(t)의 곱으로 구할 수 있다. 따라서 엔진의 추(진)력이 클수록 짧은 시간으로도 빠른 속도변화를 얻어낼 수 있다. 게다가 추진력이 클수록 지구 중력을 이기고 밀어올릴 수 있는 물체의 질량이 커지므로 더 무거운 인공위성을 실어나를 수 있다. 인공위성 발사체 성능에서 추진력이 중요한 이유이다. 그리고 발사과정 중에 시간이 중요한 측정치로 등장하는 이유이다. 결국 더 큰 추력을 낼 수 있는 엔진을 만들어 더 오랫동안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 인공위성 발사체의 핵심 성능이다. 

 

누리호는 제1 우주속도에 도달하지 못했다. 

누리호의 목표 궤도는 고도 700km였다. 이는 지구 반지름 6400km에서 많이 바뀌지 않았으므로 누리호는 제1 우주속도와 거의 비슷한 수준에 도달해야 했다. 하지만 고도 700km까지 올라가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결국 속도가 미진하여 계획된 궤도 위를 움직이지 못하였다. 누리호의 최고 속도는 6.4km정도 수준이었다. 속력(v)으로는 84%밖에 되지 않았다. 

누리호에 쓰인 엔진들의 추력은 이미 그 값이 구해져있다. 1단은 75t 엔진 4개를 묶어 300t, 2단은 75t엔진 1개, 3단은 7t엔진 1개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엔진이 가동한 시간(t)만 알면 목표 속력에 도달했는지 여부를 알 수 있다. 누리호 발사 과정에 걸린 시간이 주로 소개된 이유이다. 3단 엔진의 목표 가동시간이 521초였는데 427초밖에 작동하지 못했다고 한다. 

 

누리호 시험발사는 실패인가 성공인가

실패와 성공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인공위성이 목표 궤도에 안착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시험발사를 섯불리 실패라 규정할 수 없다. 실패와 성공은 시험의 목표가 무엇이었나에 따라 달라진다. 

이번 시험발사의 최종 목표는 모형 인공위성을 목표 궤도에 정확히 진입시키는 것이었다. 이 점만으로 보면 실패라고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첫번째 실제 발사이므로 설계한 것과 어느 정도 유사하게 실제 발사 과정이 진행되는지 아는 것도 이번 시험 발사의 목표였다고 한다. 이 점으로 보면, 3단 엔진 작동시간이 짧은 것만 빼고 모두 예상대로 작동한 것을 확인했으므로 시험 자체는 성공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절반의 성공, 사실상 성공이라는 표현하였다. 복잡도가 높은 인공위성 발사시험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한 평가였다고 볼 수 있다. 

 

시험인가 실험인가?

실험과 시험을 한글로 써놓으면 비슷해보이지만 영어로 옮겨놓으면 그 뜻은 명확해진다. 실험(experiment)은 이론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실험실 내부에서 고도로 통제된 조건에서 진행되는 것을 말한다. 실험에 성공하면 제대로 된 이론을 찾았음을 뜻한다. 우주의 작동원리 중 일부를 찾아냈다는 것을 뜻한다. 

반면, 시험(test)은 이미 만들어진 제품의 성능을 점검하는 것이다. 실험 등을 통해 검증된 이론이 있고 그를 통해 만들어진 제품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여부를 점검하는 것이다. 시험의 실패와 성공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었는지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누리호는 여러 이론들을 활용하여 로켓에 의해 가속된 인공위성을 원하는 궤도에 올려 작동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품이다. 누리호의 원래 이름도 ‘Korea Space Launch Vehicle’이었던 만큼, 누리호 발사는 시험이었지 실험이 아니었다. 

 

누리호는 우리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인가?

누리호 개발과정은 외부의 도움 없이 우리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우주발사체가 워낙 첨단기술의 집약체이므로 기술이전해줄 나라가 별로 없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였다. 그리고 우주발사체에 들어가는 로켓 기술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으로 전용될 수 있으므로 기술이전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 두번째 이유였다. 특히 1, 2단을 구성하는 75t급 엔진을 독자적으로 개발한 점을 들어 누리호 전체를 독자적으로 개발했다는 설명이 많았다. 

물론 공식적, 외형적으로는 독자개발이라고 해도 틀린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로호 1단을 러시아에서 수입해서 썼으며 당시 협력했던 러시아, 우크라이나 과학기술자들에게 직간접적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외부 협력 없는 독자개발이라 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민간기업들도 참여하고 있었고 이들의 국제 활동에 UN제재와 같은 제약이 없었으며 참여 과학기술자들의 해외 유학과 교류 경험 등이 활발했음을 염두에 둔다면 독자개발이라고 평가하기 망설여지는 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리호를 만들어낸 모든 과학기술자들의 노력과 시도는 박수받을만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깊이 격려해주었다.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체 수준은?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시험은 지금까지 5차례 있었다. 1998년에 광명성 1호(북의 첫 인공위성)를 은하 1호(북의 첫 우주발사체)에 실어 처음 발사한 이후, 2009년, 2012년, 2016년에 시험발사를 진행했다. 2012년 광명성+은하 3-1호기만 발사과정에서 폭파되었고 나머지 4번의 시험발사는 최종 인공위성 분리까지 무리없이 진행되었다. 다만 매번 북한의 시험발사에 대해 대부분의 평가는 ‘실패’로 항상 결론지어졌다. 무엇을 목표로 시험발사되었는지 살펴보지도 않았다. 궤도에 올라간 인공위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낙하하던 1단이 폭파하였다, 인공위성 무게가 너무 가볍다는 등 석연찮은 이유로 실패라는 평가를 빨리 내리는 경향이 많았다. 

일단 인공위성과 같이 지구를 순환하는 비행물체의 궤적을 제대로 추적하려면 X밴드라고 하는 특수 장비가 필요하다. 미국의 X밴드가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시험을 제대로 추적하게 된 것은 2012년 광명성+은하 3-2호가 처음이었다. 그 전에는 기습 발사 혹은 고장 및 점검 등의 이유로 X밴드가 현장에서 관측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따라서 2012년 이전에는 인공위성이 궤도에 제대로 올랐는지 측정조차 못했으므로 평가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제대로 측정된 광명성+은하 3-2호와 4호는 궤도에 제대로 올라갔다는 평가와 함께 NASA로부터 고유번호까지 부여받았다. 

북한의 시도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으려는 경향은 핵, 미사일, 인공위성과 관련해서 ‘시험’이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는 것에서도 볼 수 있다. 특히 핵시험은 거의 대부분 ‘핵실험’이라고 불렀고 인공위성은 시험/실험 없이 그냥 ‘발사’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무기에 대해서만 ‘시험발사’라는 말을 썼다. 

북한의 1인당 GDP는 2000달러가 채 안 된다고 한다. 이정도 경제 규모, 수준에도 불구하고 인공위성발사체는 물론, 사거리 1만km를 훌쩍 넘기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개발한 나라는 북한이 유일하다. 북한은 전세계 5~6개 정도의 나라만 보유하고 있는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개발했다. 잠수함에서 SLBM이 발사되는 장면은 북극성(북의 첫 SLBM)이 처음 공개되었던 2015년에 이미 영사으로 공개되었기에 우리나라보다 최소 6년은 앞서있다. 

북한은 수산물 수출입도 통제하는 폭넓고 강력한 UN 제재 속에 있기 때문에 외국의 협력은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수준이다. 과학기술 분야는 외국 유학도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들의 인공위성 발사체 개발을 독자적으로 추진했다는 것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2019년부터 UN제재를 전쟁 무기처럼 사용한다는 판단에 수입대체, 국산화를 통해 위기를 정면돌파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만큼 ‘독자개발’ 요구와 수준은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고 평가할만하다. 

 

같은 과학기술, 다른 평가

누리호와 북한의 은하호는 과학기술적 측면에서 같은 것이다. 인공위성과 그것을 실어나르는 우주발사체, 이들의 과학기술은 다를 것이 거의 없다. 하지만 누리호의 개발과정 및 시험발사에 대한 평가에서 보였던 객관적이고 깊이있는 성찰의식은 은하호에 대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비록 궤도에 안착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이를 개발하는데 열정을 바친 과학기술자들을 격려하던 목소리는 광명성+은하호 개발 과학기술자들에 대해서는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조롱하는 경우도 있었다. 

문제는 이렇게 치우치고 비합리적인 반응을 내리면서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과학적 객관성, 합리성을 지향하던 지성도 ‘북한’이라는 필터와 결합되면 왜곡되고 변형되기 쉬운 듯하다. 2012년 4월 광명성+은하 3-1호가 처음으로 시험발사 도중 폭발한 것에 대한 반응을 보면 극명하게 보인다. 몇 번에 걸친 시험발사의 실패를 겪은 나로호에 대해 재발사를 당연하게 여겼던 사람들이 광명성+은하호가  재발사될 것이라고는 거의 예측하지 못했다. 심지어 불과 1개월 후, 실패의 원인 분석과 대비 마련을 끝냈다는 북한 뉴스가 공개되었지만 이를 주목한 언론이 거의 없었다. 결국 광명성+은하 3-2호는 8개월만에 재발사되었고 미국은 처음으로 성공했음을 확인해주었다. 

누리호가 ICBM 시험용이라고 지적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지만 대부분 이를 진지하게 평가하지는 않는다. 반면, 북한의 광명성+은하 시험발사는 ICBM개발용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어도 당연히 인정되는 분위기이다. 똑같은 분단국가이고 정전중인 당사국이며 서로 군사적 충돌도 적지 않았지만 북한의 광명성+은하호는 ICBM 시험용일 수 있지만 우리의 누리호는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는 합리적 근거 없이 내려진 평가이다. 과학기술이 이데올로기와 만나면 변형되는 걸까? 과학기술도 휴전선 앞에서는 예리함이 무뎌지는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