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에피소드로 본 북한 과학기술의 역사

5. 천리마운동이 시작되던 날

천리마운동이 시작되던 날



강호제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소장) (Institut für Koreastudien Freie Universität Berlin, Affiliated Fellow)


195611월 소련은 강철재 지원 약속을 일방적으로 철회하였다. 이에 당황하여 자체적으로 조달할 방법을 백방으로 찾아보았지만 연말 직전까지도 해결책을 찾지 못하였던 북 지도부는 중요 생산현장을 분담해 직접 찾아가 해결책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김일성은 강철생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강선제강소를 맡았다. 19561227일에 김일성이 강선제강소(현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를 현지지도하면서 천리마운동은 시작되었다.

 

강선제강소를 찾은 김일성은 일반 노동자들을 모두 모아두고 당시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면서 원래의 경제개발계획을 고수해야할 필요성과 강재를 추가 생산해야만 하는 절박성을 설명했다. 그리고 구체적인 증산방법을 물었다.


동무들이 다음 해에 강재를 1만 톤만 더 생산하면 나라가 허리를 펼 수 있습니다.”


이에 한 압연공이 조심스럽게 일어나 분괴압연기를 보수하는 날이 1년에 100일 정도 되는 것을 90일로 단축해서 기계를 가동하는 시간을 약 10일 정도 더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을 하였다. 여기서부터 논의의 물고가 트이기 시작하였다.


열흘이라도 대단합니다. 그런데 그 말은 결국 평균 3일 돌리고 하루 세운다는 소린데?”


이에 옆에 있던 강선제강소 기사장이 압연기의 롤러 핵심부품인 베어링이 3일이면 닳아버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세워야 하고 그 틈을 타 보수정비를 하려면 하루가 필요하다고 대답하였다. 당시 기술 수준이나 기계 수준을 고려한 작업 지침이라는 설명이었다


마모율이 낮은 베어링으로 교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그렇긴 하지만... 아직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계 가동 일수가 짧으므로 이를 늘이는 것이 증산하는 가장 빠른 방법일 수 있지만 기계제작 기술의 한계로 인해 이를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 기술 간부들의 판단이었다.


여기서 압연기를 담당하던 오랜 노동자중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꺼냈다.


수상님 말씀이 옳습니다.”


허허... 뭐가 옳다는거요?”


지금 롤러 베어링을 교체하는 날은 하루를 다 쓰고 있는데 교체는 16시간, 잘하면 12시간이면 됩니다. 여기서 8시간에서 12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새로운 베어링을 제작할 수는 없지만 베어링 교체작업 방법을 좀 더 개선하면 개보수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작업 숙달도를 높이고 기중기를 비롯하여 각종 공구와 재료 등을 사전에 잘 마련해 두면, 대략 16시간, 잘하면 12시간 안에 교체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래, 시간은 어떻게 산출했소?”


저희들이 준비를 잘해가지고 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16시간 걸렸고 다음번에는 12시간 걸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놀라며 왜 진작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자신도 최근에서야 동료들과 시험해본 것이라 이야기하지 못했다고 대답하였다.


김일성은 이를 적극 찬성하면서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제안해보라고 힘을 실어주었다. 이에 탄력을 받아 새로운 의견이 나왔다. 교대본위주의를 없애자는 것이다. 하나의 로()를 여러 작업반이 교대로 담당하는데 교대할 때 가열로의 온도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가열로 실수율(實收率)이 몇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자기 교대만 신경쓰지 말고 서로가 좀 더 신경 쓰면 실수율을 더욱 높일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또 다른 사람은 현재 가스관에 제진장치가 없어 재가 차는 바람에 일주일에 한 두 번씩 로를 세운다는 설명과 함께 가스관에 제진기를 설치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러면 한 달에 한번 정도만 보수하면 되니 그만큼 가동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현장의 노동자들은 대부분 지식 수준이 높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거나 새로운 설비를 만들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생산 현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술자나 관료들이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증산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었다. 즉 자신들의 경험에 비추어 작업방법의 비효율적인 부분이나 개선사항, 나아가 설비들의 문제점 정도는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기술혁신이라고 하면 새로운 기술을 발명하거나 기계 설비를 만들어내는 정도의 거창한 것만 생각하는데 이처럼 작업방법의 효율화, 설비 장비의 개선 개조 등도 기술혁신의 일종이다.


흔히 사람들은 천리마운동을 무식하게 일을 많이 해서 목표를 초과달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 천리마운동은 기술혁신을 강력하게 추구하면서 진행되었다.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과학기술적 지원 활동은 과학원 소속 고급 과학기술자들을 현장에 파견하면서 메워나갔다.


2009년 신년 공동사설에 다시 등장한 천리마운동은 2008년 1224일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를 김정일이 현지지도하면서 시작되었다. 김일성이 천리마운동을 추동하던 모습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다. 앞으로 북한이 어떤 방식의 기술혁신운동을 전개할 지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9년 신년 공동사설을 보면 익숙하면서도 낯선 단어가 하나 보인다, ‘천리마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주체사상과 함께 북을 상징하는 단어 중 하나인 천리마운동은 1956년에 시작된 북 특유의 대중운동을 말한다.


당시 이북 경제가 급격하게 성장하였던 배경으로 인식되어 빠른 경제성장을 뜻하는 구호성 용어로 주로 사용되던 천리마운동이 이번에는 좀 더 실질적인 맥락에서 사용되었다. 김일성이 19561227일 강선제강소를 현지지도하면서 천리마운동이 시작되었던 것처럼 2009년 신년사설의 천리마운동은 김정일이 20081224일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구 강선제강소)를 현지지도하면서 직접 제안하여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위한 목표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과학기술의 시대인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1950년대 대중운동인 천리마운동이 다시 등장한 것은 어떤 까닭일까? 보통 사람들은 천리마운동을 새벽별 보기 운동’, ‘천 삽 뜨고 허리 한 번 펴기 운동등과 같이, 한마디로 무식하게 일을 많이 해서 목표를 초과달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 천리마운동의 재등장을 상당히 생뚱맞은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천리마운동의 거론을 시대에 뒤떨어진 북의 모습, 혹은 구태의연한 양적 성장 방식의 집착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천리마운동이 우리의 선입견처럼 단지 노동시간을 늘이거나 투입요소를 늘이는 양적 성장만 꾀한 것이 아니었다.


천리마운동이 시작되던 장면을 한 번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김일성이 강선제강소를 찾아간 날은 15개년계획(1957~1960)’이 시작되기 불과 5일 전이었다. 지난 11월 소련이 일방적으로 강재 원조 약속을 철회하여 이를 보충할 방법을 백방으로 찾고 있던 상황이었다. 원조계획이 철회된 강재를 자체적으로 생산하여 원래 계획을 고치지 않겠다는 결심은 하였으나 구체적인 실행 방법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최종적으로 생산현장에서 일반 대중들과 토론해보겠다는 판단에서 김일성은 강선제강소를 찾았던 것이다.


강선제강소를 찾은 김일성은 일반 노동자들을 모두 모아두고 당시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면서 원래 계획을 고수해야할 필요성과 강재를 추가 생산해야만 하는 절박성을 설명했다. 그리고 구체적인 증산방법을 물었다.


이에 한 압연공이 분괴압연기를 보수하는 날이 1년에 100일 정도 되는 것을 90일로 단축해서 기계를 가동하는 시간을 약 10일 정도 더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을 하였다. 여기서부터 논의의 물고가 트이기 시작하였다.


김일성은 왜 기계를 대략 3일간 가동하고 나서 1일 쉬게 해야 하는 지 물었다. 압연기의 롤러 핵심부품인 베어링이 3일이면 닳아버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세워야 하고 그 틈을 타 보수정비를 하려면 하루가 필요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당시 기술 수준이나 기계 수준을 고려한 합리적인 작업 지침이라는 부연설명도 달렸다. 기계 가동 일수가 짧으므로 이를 늘이는 것이 증산하는 가장 빠른 방법일 수 있지만 기계제작 기술의 한계로 인해 이를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 기술 간부들의 판단이었다.


여기서 압연기를 담당하던 오랜 노동자중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꺼냈다. 마모율이 낮은 베어링 제작 기술을 당장 개발할 방법은 없지만 베어링 교체작업 방법을 좀 더 개선하면 개보수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교체 작업방법에 대한 숙달도를 높이고 기중기를 비롯하여 각종 교체 작업에 쓰이는 재료, 공구 등을 사전에 잘 마련해 두면, 대략 16시간, 잘하면 12시간 안에 교체작업을 마무리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놀라며 왜 진작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자신도 최근에서야 동료들과 시험해본 것이라 이야기하지 못했다고 대답하였다. 김일성은 이를 적극 찬성하면서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제안해보라고 힘을 실어주었다.


이에 탄력을 받아 새로운 의견이 나왔다. 교대본위주의를 없애자는 것이다. 하나의 로()를 여러 작업반이 교대로 담당하는데 작업 교대 당시 가열로의 온도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가열로를 실수율이 몇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서로가 좀 더 신경 쓰면 실수율을 더욱 높일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또 다른 사람은 현재 가스관에 제진장치가 없어 재가 차서 일주일에 한 두 번씩 로를 세운다는 설명과 함께 가스관에 제진기를 설치하면 한 달에 한번 정도만 보수하면 된다고 제안하였다.


현장의 노동자들은 대부분 지식 수준이 높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거나 설비를 만들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생산 현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술자나 관료들이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작업방법을 효율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나 설비를 효율적으로 작동시킬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