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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동향 브리핑(이대 통일학연구원)

남북관계에 적용되는 ‘보존법칙’

물리학에서 발견한 중요한 이론 중 하나가 바로 ‘에너지 보존법칙’이다. ‘무언가 일정한 양’이 정해져 있고 그 양은 다양한 형태로 변화가능하다는 것을 직감했던 19세기 초 물리학자들은 그 ‘무언가 일정한 양’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탐구했다. 결국 1840년 경 영국의 물리학자 J.P. 줄에 의해 ‘에너지’라는 개념이 발견되었다.

에너지는 운동에너지, 위치에너지, 열, 빛에너지, 소리에너지, 전기에너지 등 다양한 형태로 변화될 수 있는 것을 뜻하는데 중요한 것은 그 총량이 보존된다는 것이다. 물리학에서는 이것 말고도 ‘운동량 보존법칙’, ‘질량 보존법칙(질량-에너지 보존법칙)’, ‘전하량 보존법칙’ 등이 있어 물리적 변화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된다.

남북관계에도 이러한 보존법칙과 같은 개념을 적용해볼 수 있을 듯하다. 예를 들어 ‘대화와 분쟁의 총합 보존법칙’ 같은 것...

과거 남북이 분리되어 각자의 발전경로를 밟아 나갈 때는 남북을 통합하여 설명할 수 있는 흐름이 생겨나지 않았지만 1990년대 후반, 남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남북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기 시작하였다.

남북 인적 왕래만 하더라도 1996년 이전까지 한해 100명이 채 안 되었다. 그러나 1996년부터 536명, 1461명으로 대폭 증가하다가 개성공단이 활발하게 가동되기 시작한 다음 왕래인원은 폭증하여 2008년에는 18만6775명으로 최고 정점을 찍었다. 남북 선박왕래 수도 이와 비슷하였는데 1994년 97건이었다가 1995년부터 307건으로 늘어 한동안 300건 수준을 유지하다가 1998년 602건, 1999년 1714건으로 2배씩 증가하였다. 결국 2007년에 1,1891건으로 최고 정점에 도달하였다. 남북을 왕래하는 인원이나 선박, 항공기 등은 1990년대 말부터 2007~8년경까지 가파르게 상승하였다는 것이 통계수치로 나타난다. 이렇듯 남북은 활발한 교류협력의 과정에서 하나로 서서히 묶여가고 있다.

하지만 남북 교류를 나타내는 모든 수치는 2007~8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감소한다. 특히 남북 당국자간의 대화인 남북회담 횟수가 2007년 55회를 정점으로 2008년 6회, 2009회 6회로 거의 없어지다시피 하였다. 대화가 갑자기 단절되기 시작한 것이다. 일반적인 정상적인 국가들 사이에서도 관계가 단절되기 시작하면 오해와 분쟁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남북과 같이 특수한 관계, 즉 정전체제가 이어지고 있는 관계는 대화가 단절되면 더욱 갈등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급격히 가까워져 서로의 발전경로에 깊이 영향을 주는 관계가 된 상태에서 교류가 뚝 끊기게 되면 그 흐름은 자연스럽게 충돌양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최근 남북관계를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흐름으로 ‘대화와 분쟁의 총합 보존법칙’과 같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하다. 즉<(대화의 질)*(대화의 양) + (분쟁의 질)*(분쟁의 양)=일정>과 같은 표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화가 줄면 상대적으로 분쟁이 늘어나고 늘어난 분쟁은 대화를 통해서만 풀 수 있다는 것이다. 분쟁이 늘어났다고 대화를 더욱 단절하게 되면 더 큰 분쟁이 일어날 수 있는데 그것이 이번 연평도 포격사건이 아닐까 싶다.

자연법칙이란 총량만 일정하면 어느 값이 많더라도 상관 없겠지만 인간사와 관련한 법칙에서는 일정한 지향성이 나타난다. 대화와 분쟁이 연결된 개념이라면 분쟁보다는 대화를 지향하는 것이 인간의 심정일 것이다. 일시적으로 분쟁이 격해질 수는 있지만 이미 ‘대화-분쟁 보존법칙’으로 연결되었으므로 점차 분쟁보다는 대화 쪽으로 방향성이 생길 것이다. 실제로 남북관계에서 분쟁이 격심해지면 모든 사람들에게 피해가 돌아가므로 전쟁보다는 평화, 대결보다는 화해, 단절보다는 교류, 분쟁보다는 대화가 답이 될 수밖에 없다. 무기도 결국 사람을 해치기 위해서 만들었다기보다 자신을 포함하여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해 만든 것이다.

북한이 연평도에 포격을 가하기 직전 우라늄 농축에 쓰이는 원심분리기를 공개한 것은 분쟁의 끝이 대화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을 때를 대비하여 배수의 진을 친 것은 아닐까. 평화와 전쟁, 양쪽 모두에서 작동가능한 원자력 발전소(경수로), 모래시계와 같이 시간의 제한성을 명시하는 원심분리기, 그리고 한 단계 높은 수준의 분쟁인 연평도 포격사건, 그 다음으로 이어질 사건은 ‘대화-분쟁 보존법칙’이 성립한다면 예측가능할 것이다. 대화의 단절에 이은 분쟁, 그 분쟁의 끝은 다시 대화로... 비록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남북 군사회담의 제의와 중국에 의한 6자회담 개최 제의는 긍정적인 흐름을 나타내고 있어 환영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