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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날론

2. 북 과학기술계의 초석, 월북 과학기술자 북 과학기술계의 초석, 월북 과학기술자 강호제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소장) 1947년 어느 날, ‘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안(국대안)’ 파동으로 인해 경성대학 교수직을 던지고 고향인 전남 담양에 내려와 있던 리승기에게 북에서 사람이 내려왔다. “리 선생, 이번에 고생 많이 하셨다는 소식 듣고 찾아왔습니다. 선생과 같이 유능한 과학자가 연구에 매진하지 못하고 후학 양성에도 힘쓰지 못하고 계시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어쩌겠습니까, 제 능력과 신망이 이정도 뿐인 것을...” “리 선생, 그래도 계속 이곳에 남아 계실 겁니까? 북으로 갑시다. 그곳에서 편안하게 연구하면서 제자를 길러냅시다. 그리고 선생이 개발한 비날론을 공업화해서 우리 인민들이 따뜻하고 예쁜 옷을 부족함 없이 맘껏 입을.. 더보기
2. 리승기-비날론 신화의 주인공 리승기-비날론 신화의 주인공 강호제 (NKTech.net 큐레이터, 극동문제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이승기’라고 하면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엄친아의 대명사, 가수, 허당’ 등으로 불리는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북에서 ‘리승기’라고 하면 ‘과학자의 대명사’이자 가장 유명한 과학자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는 미국 듀폰사에서 개발하여 전 세계적으로 히트시킨 합성섬유 ‘나일론’에 버금가는 ‘비날론’을 발명한 사람이다. 비날론의 발명과 이를 공업화하는 데 공헌한 대가로 그는 1959년 처음 제정된 ‘인민상’의 과학자 부문 첫 수상자가 되었고 ‘로력영웅’ 칭호도 받았으며 이후 김일성상과 김일성훈장까지 받았다.(제1회 인민상을 리승기와 함께 받은 기술부문 수상자는 주종명이다) 석유를 주원료로 하는 나일론과 .. 더보기
(민족21 2011-2월호) 북 화학공업의 중심지, 함흥화학공업도시의 형성 (민족21 2011-2월호) 북 화학공업의 중심지, 함흥화학공업도시의 형성 1960년 9월 1일, 비날론공장이 건설되고 있던 함흥시에서 ‘비날론 공장 건설 관계부문 열성자 회의’가 열렸다. 세계 최대 규모의 비날론 공장 건설을 제4차 당대회가 개최될 1961년 9월 이전에 완성하기 위한 대책모임이었다. 비날론은 리승기가 일제시기에 개발한 기술을 바탕으로 북에서 공업화에 성공한 합성섬유이다. 리승기가 월북할 한국전쟁시기까지는 비날론을 공업화하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직 많이 남아있었지만 북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1961년에 대규모 비날론 공장이 완공될 정도로 비날론 공업화 기술은 급속하게 발전하였다. 비날론 공업화 연구는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1952년부터 일산 20kg(연산 80t)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