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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로 본 북 과학기술사(민족21 연재)

(민족21 2009년 11월호) 단번도약의 역사적 사례 - 새로운 정밀 금속가공방법의 개발

(민족21 2009년 11월호) 단번도약의 역사적 사례 - 새로운 정밀 금속가공방법의 개발


강호제 


민족21, 2009년 11월호

단번도약의 역사적 사례 - 새로운 정밀 금속가공방법의 개발



“자, 이제 눈을 서서히 떠 보세요. 뭔가 보입니까?”

“... 예, 선생님! 보여요, 아니 눈이 부셔요!”

“제 얼굴이 보입니까, 아드님 얼굴을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예~! 창문도 보이고, 선생님 얼굴도 보이고, 아이구, 제 아들 얼굴도 잘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는 몇 해 전 ‘느낌표2’라는 TV 프로그램에서 했던 ‘눈을 떠요’의 한 장면이 아니라, 1960년대 초 평양의과대학병원 안과 병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각막 이상으로 인해 앞을 못 보던 환자들에게 각막이식 수술을 해주어 시력을 되찾게 해주었던 것이다. 

해방 직후 이북 지역에 과학기술자들은 매우 부족했지만 의사들은 상당히 많이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의학이 발달해 있었다. 이들을 적극 활용한 의료 정책이 실행되어 평양의과대학병원에서는 한 달에 약 30회 정도 이러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각막이식수술은 각막을 아주 얇게 잘라 붙이는 것이므로 고도의 정밀도를 요구하는 수술이다. 따라서 의사들의 수술 실력도 중요하지만 각막을 자르는 도구의 정밀도 또한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초기에는 이러한 정밀 수술도구를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한 달에 3~4건의 수술밖에 못하다가 1960년대 초에 수술도구의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수술 횟수가 급격히 늘어났던 것이다. 

‘각막이식용 수술도구(트레판Trepan or 트레파인Trephine)’의 제작기술 자립화는 1961년 9월에 ‘운산공구공장 오응화작업반’이 개발한 새로운 금속가공방법에 의해 가능하게 되었다. 그가 개발한 금속가공방법은 0.001㎜의 정밀도를 보장하는 고급 기술이어서 0.01㎜ 수준의 정밀도가 요구되는 트레판은 큰 어려움 없이 자체 생산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오응화는 수입에 의존하던 ‘틈새게이지(간극게이지, clearance gage)’를 자체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새로운 금속가공방법을 개발하였다. 기존의 게이지 생산 방법은 금속판을 얇게 갈아서 두께를 맞추는 ‘연마법’이었는데 새롭게 개발된 방법은 롤러로 금속판을 밀어 두께를 맞추고 열처리를 거치는 ‘압착가공방법’을 사용한 것이었다. 여기서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금속판을 밀어 두께를 조절하는 압연기의 롤러를 만드는 것인데 상당히 딱딱하면서도 표면이 매끈하게 처리될 수 있는 재질을 찾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결국 ‘고속도강 18’이라는 특수강이 공급되면서 롤러가 완성될 수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지방 정부나 지역 당 수준을 넘어 중앙당까지 관여하였다. 중앙당에서는 구하기 힘든 특수강을 공급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만능현미경과 마이크로미터 등 고급 측정기구까지 아낌없이 마련해주었다.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과학기술 발전 속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이라는 현대 과학기술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계획경제를 추구하면서 중앙집권적 조직체계를 갖추고 있는 북은 기본적으로 과학기술 발전에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가공법에서 마지막 처리에 해당하는 열처리 공정을 모든 재질의 제품에 적용할 수 있는 ‘열처리 조작표’를 작성하는 것도 매우 힘든 일이었다. 이를 위해서 생산현장의 기사들뿐만 아니라 과학원 금속재료연구실과 김책공대의 관련분야 전문가들에게 충분한 자문을 받으면서 5000여 번의 실험 끝에 오응화작업반은 결국 완성할 수 있었다. 이처럼 아직 공장 야간 고등기술학교도 졸업 못한 오응화(당시 2학년 재학 중)가 고급 과학기술이 필요한 새로운 금속가공방법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현장에 파견되어 있던 과학기술자와 과학원, 김책공대와 같은 중앙 과학기술 연구기관 및 교육기관에서 적극적으로 현장의 과학기술 활동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1958년 과학원의 현지연구사업 추진 이후 변화된 과학기술정책, 즉 현장 중심의 과학기술정책이 만든 또 하나의 결실이었다.

새로운 정밀 금속가공방법은 게이지 생산 환경 전체를 바꾸어 놓았다. 기존의 연마법을 통해 0.03㎜ 수준의 게이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사전 공정과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였지만, 새로운 압착가공방법으로 바꾸면서 공정단계가 대폭 줄어들었고 무엇보다 비숙련공도 작업 가능한 공정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각종 톱을 가공하던 120대의 기대, 틈새게이지를 만들던 27대의 연마기, 각종 프레스기 및 절삭기 등이 필요 없게 되었다. 또한 그동안 틈새게이지 제작을 담당했던 고급 기능공들의 일도 대폭 줄어들어 차출되어 왔던 고급 기능공들은 다른 고급기술을 요구하는 작업장으로 보내졌고 대신 비숙련공으로 대체되었다. 숙련공 활용에 여유가 생긴 것이다. 이런 변화로 인해 제품 당 생산성은 무려 7000%로 대폭 향상되었다. 과거에 비해 저급의 적은 노동력을 활용하여 훨씬 높은 수준의 정밀도를 보장하는 제품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말 그대로 비약(飛躍, 나는 듯이 높이 뛰어오름)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던 셈이다. 

오늘날 북은 강성대국 건설을 앞당기기 위해 모든 생산현장에서 기술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과거에는 생산과 기술혁신을 동시에 추진하였지만 오늘날에는 생산을 중단하고서라도 기술혁신을 추진하라고 독려하고 있다. 수준 낮은 기존의 생산방법을 버리고 높은 수준의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생산방법을 도입한다면 혁신을 위해 생산이 중단되었던 손실을 단시간에 만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서 생산수준을 일거에 높이겠다는 전략은 ‘단번도약’이라는 한마디로 응축해서 표현되고 있다. 연마법에서 압착가공법으로 전환하면서 공정의 대폭 축소, 요구 노동력의 대폭 감소, 요구 기술수준의 대폭 하향, 생산설비의 대폭 감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의 비약적인 증가를 보인 위의 사례는 기술혁신을 통한 ‘단번도약’ 전략의 구체적인 역사적 사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