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남북동향 브리핑(이대 통일학연구원)

북한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 (남북동향브리핑 2010년 12월 27일 ~ 2011년 1월 2일)

어떤 대상이든 어울리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있기 마련이다. 그 대상의 성격, 캐릭터가 강할수록 이러한 단어의 어울림이 명확하게 구분된다. 캐릭터란 그 자체로부터 생겨나는 경우도 있지만 외부에 의해 주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강한 캐릭터가 구축되면 그 대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점차 빈약해지는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대상의 실체를 가리기 위해 외부에서 그 대상에게 강한 캐릭터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그렇게 되면 그 대상의 실체는 점차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

북한이라는 대상도 캐릭터가 아주 강한 편이라 할 수 있다. 북한과 어울리는 단어는 정치, 사상, 주체, 선군, 김일성, 김정일, 획일화, 선전 선동, 경제난, 인권 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한과 과학기술, 희망, 발전, 자유, 일상 등의 연결은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특히 지난 2010년은 남북의 대결 정도가 상당히 우려스러운 수준까지 올라가버려 북한의 이미지는 일상적인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스스로 정상국가화 되려는 노력이나 국방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키겠다는 북한 지도부의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게 되어버렸다. 특히 2010년 북한이 한 해 목표로 제시한 경공업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

북한이 경공업을 발전시키겠다고 하더라도 그 본뜻은 중공업을 정상화시킨 상태에서 경공업의 발전을 위해 좀 더 노력하겠다는 의미이다. 최근 북한은 가동이 중단되었던 제철소, 제강소, 비료공장, 화학공장, 발전소 등을 정상화시켜나갔다. 그런 바탕 위에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섬유, 물감, 비료, 염료, 합성수지 등의 생산을 정상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2010년 한 해 동안 북한 언론매체를 통해 상당히 많은 구체적인 사례들이 보도되었는데 소개된 경우가 거의 없다.

또한 북한이 어려운 시기에도 늦추지 않고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던 부문이 국방 과학기술 부문이었다. 최근 북한은 낙후한 민간 부문을 빠르게 발전시키기 위해 국방 과학기술을 민간 부문으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이를 위해 2010년 신년 공동사설에서 CNC화, CNC기술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이런 계획에 맞추어 올해 북한의 생산현장에서는 많은 설비들이 자동화, CNC화 되어 생산속도, 생산능률이 대폭 높아졌다고 한다. 이런 소식들도 또한 북한 언론을 통해 많이 보도되었지만 외부로 소개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2010년을 평가하고 2011년 계획으로 발표된 신년 공동사설을 분석함에 있어서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모습, 즉 핵문제, 남북문제, 세습의 문제 뿐만 아니라 북한 스스로 설정한 최대 과제, 즉 경제발전, 그것도 경공업과 농업의 발전을 위한 노력들도 제대로 분석, 평가하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 나온 북한의 신년공동사설에 대한 분석에는 이런 내용이 거의 나오고 있지 않다.

물론 북한 지도부가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시도한 다양한 노력들이 어떠한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지, 아직 이것에 대해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북한에 부여된 강한 캐릭터에 갖혀 다른 모습들을 살피지 않는다면 조만간 북한은 영영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 될 것이다. 어느 순간 되돌아보면 북한이라는 존재는 저 멀리 동떨어져 있는, 낯선 존재가 되어 있을 수 있다. 우리가 북한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이런 상태를 원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