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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동향 브리핑(이대 통일학연구원)

원심분리기와 경수로 공개에서 읽어야 한 것 ( 2010년 11월 15일 ~ 2010년 11월 21일)

지난 주에 북핵과 관련한 새로운 사실들이 몇 가지 전해졌다. 2012년을 완공 기점으로 삼은 경수로가 영변 지역에 건설되고 있고 경수로 연료를 만드는 원심분리기가 며칠 전부터 작동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200952차 핵실험 이후 핵관련 소식이 잠잠하다가 핵관련 소식이, 그것도 구체적인 물리적 실체를 가진 상태로 전해지니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여기에 집중되었다.

사실 북한의 핵활동은 협상을 통해 중단되지 않고서는 계속 진행되어 왔다. 즉 제네바 합의와 같이 미국과 협약을 맺으면서 중단한다고 선언했다면 모를까 최근 핵활동을 재개하겠다고 밝힌 만큼 북한의 핵활동은 당연한 일이다.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략적 인내 등의 이름으로 기다리는 전략이 추진될 때, 북한의 핵활동 또한 중단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너무 순진한 기대일 것이다.

이번 북한이 공개한 경수로 건설 상황과 원심분리기와 관련해서 북한이 여전히 핵폭탄을 제조하고 있다는 식의 결론만 내린다면 여기서 얻을 수 있는 많은 정보를 놓치는 것이다. 예상과 달리 상당한 규모와 수준에 도달한 실물의 등장으로 인한 충격에서 약간 벗어나, 이번 일을 통해 알아낼 수 있는 사항, 즉 놓치지 말아야 할 점들을 살펴보자.

먼저 경수로와 관련하여 공개된 정보는 이렇다. 경수로의 규모는 열량 측면에서 100MW 수준이고 20107월에 착공하여 2012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기술은 1980년대 북한이 자체적으로 만든 흑연감속로 운영 경험이라고 한다.

발전소란 터빈을 돌려 전기를 발생시키는 설비인데 물을 끓인 것으로 터빈을 돌릴 수도 있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물이나 빠져나가는 바닷물로 터빈을 돌릴 수도 있다. 핵발전이란 핵붕괴 현상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열량으로 물을 끓여 터빈을 돌리는 것인데 이때 발생하는 열량이 100MW정도라는 것이 이번에 공개된 북한의 경수로 규모이다. 터빈의 효율이 일반적으로 대략 30%정도이므로 이렇게 발생한 열로 전기를 만들면 대략 25~30MW정도가 된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북한이 자체적으로 만들었던 흑연감속로는 30MWt, 200MWt 수준이었으므로 절반 수준의 규모이다.

경수로 건설 기간이 대략 2~2년 반으로 설정된 것은 일반적인 수준보다 매우 짧게 설정된 것이라 할 수 있다. KEDO의 경우 훨씬 규모가 큰 경수로 2기를 건설하는 데 약속한 시간이 7년이었으므로 그렇게 짧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KEDO에 참가한 미국과 한국의 경우와 달리, 한 번도 경수로를 건설해본 적도 없는 북한이 이렇게 빨리 건설하겠다고 하는 것은 이미 실험실 수준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보았다는 뜻이 된다. 외부에서 관측되지는 않았지만 경수로 제작과 관련한 실험이나 시행이 다른 지역에서 진행되었다고 추론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것보다 더욱 놀라운 정보는 원심분리기와 관련된 것인데, 이는 이전까지 의심된 파키스탄의 기술이 아니라 네덜란드와 일본의 제품을 모델로 삼은 것이라고 하고 반지름 20cm, 높이 180cm 정도의 크기이고 대략 2000여기가 제작 가동 중에 있다고 한다. 원심분리기가 가동되고 있는 현장은 미국에서 핵관련 최고의 과학자가 보기에도 초현대적 시설이었다고 한다. 이 기기에서는 3.5% 수준의 저농도 우라늄이 만들어질 것이고 이것으로 가동할 경수로는 2.2~4% 농도의 우라늄을 사용한다고 한다.

원심분리기란 쉽게 말해 인공적으로 강한 중력을 만들어주는 장치이다. 부유물이 많은 물을 컵에 떠 놓으면 점차 무거운 것은 아래로, 가벼운 것은 위로 분리되는데 이와 같은 현상을 이용하여 핵분열이 잘되는 우라늄235와 핵분열을 잘 하지 않는 우라늄238을 분리하는 것이 원심분리기이다. 인공적으로 강한 중력을 만들기 위해 원심분리기는 고속으로 회전하는 장치를 갖고 있다. 회전수가 많을수록 강한 중력을 만들 수 있어 분리가 더욱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지난 시기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이러한 고속 회전하는 원심분리기를 제작할 능력이 북한에게 없을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었다. 원심분리기의 회전수가 수만 RPM(1분당 회전수)이 되어야 하는데 이렇게 고속으로 회전하는 물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벼우면서도 강도가 높은 재질이 확보되어야 하고 고속 회전이 가능한 베어링이나 회전축을 만들 수 있어야 하는데 이는 북한의 기술 수준을 뛰어넘는 수준이라는 추측이었다. 하지만 최근 북한이 대대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CNC공작기계의 성능이 터빈을 만들 정도의 정밀도를 보장할 수 있고 고속회전 능력도 갖고 있는 것이므로 북한이 자체적으로 보유한 기술력으로도 원심분리기를 제작할 수 있음이 방증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번에 공개된 원심분리기가 기술적으로 특이한 것은 아니다. 상당히 고난이도 기술력을 요구하는 원심분리기를 수 천기 만들어 가동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북한의 기계제작 능력이 CNC공작기계 제작으로 드러난 것처럼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이 CNC기술을 확보해서 공개하기 시작한 것이 2008년 후반부터였으므로 아마도 원심분리기 제작도 이 시기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더욱 높은 기술력을 요구하는 터빈도 자체적으로 만든다고 하니 이러한 기술이 민수로 전환되기만 하면, 그리고 그런 흐름이 강해지기만 하면 북한의 경제는 급격히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