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남북동향 브리핑(이대 통일학연구원)

12월 20일 연평도 사격훈련이 남긴 것 (2010년 12월 13일 ~ 2010년 12월 19일 )

남을 집적거려 이 일어나게 함”이라는 뜻의 ‘도발(挑發)’은 보통 ‘전쟁을 도발하다’는 말로 쓰인다. 전쟁과 같은 큰 싸움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있는 행위이다. 그런데 싸움(전쟁)을 하는 행위만으로 보면 드러난 모습이 똑같기 때문에 드러난 행위만으로 잘잘못을 따지기 힘들기 때문에 누가 먼저 싸웅(전쟁)을 시작했느냐에 따라 책임소재를 가리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경우, 먼저 때린 편이 맞은 편보다 잘못하였다고 판단한다. 전쟁의 경우, 먼저 실질적인 공격을 감행한 측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비난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싸움의 시작이 왜 일어났느냐도 잘잘못을 따지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자신에게 상대방이 직접적인 위해를 입히려고 하여 이를 지키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정당방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이렇게 되면 정당방어라고 주장하는 그 행위가 과연 피치못할, 적절한 수준의 행위였는지를 따져야 하는데 이는 아주 어려운 일이 된다.

싸움을 하고 싶지만 먼저 행동을 하게 되면 싸움을 일으킨 책임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에 싸움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싸움은 실질적인 행동보다 싸움을 ‘도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런 행위는 ‘정당방어’ 논리와 연결되어 잘잘못을 가리는 데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지난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과 이번 남한의 포격훈련은 한반도에서 누가 전쟁(싸움)을 일으키고 있나(혹은 일으키려고 하는가)하는 점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다.

지난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은 명백히 북한의 잘못이라 할 만하다. 아무리 남한에서 사격훈련을 한 곳이 자신들의 영해라고 주장하는 곳이라 하더라도, 또한 사격을 하게 되면 대응을 하겠다는 경고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훈련 상황에 대해 민간인 피해자까지 발생하도록 실제 포탄공격을 감행한 행위를 정당방어로 보기 어렵다. 눈앞에서 주먹을 들고 약올리다가 자신의 옷깃을 살짝 스쳤다 하더라도 상대방을 직접적으로 가격하게 되면 가격한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이번 남한의 포격훈련은 명백히 남한의 잘못이라고 결론내릴 만하다. 특히 대응반격을 공언하던 북한이 반격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남한의 잘못된 행동이었다는 평가를 벗어나기 힘들게 되었다. 군사적 긴장이 매우 높아진 지역에서 전투기까지 준비시키고 민간인들을 삶의 터전에서 쫓아내면서까지 포격훈련을 해야 할 이유는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행위는 북한에게 싸움을 ‘도발’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난 번 싸움에서 자신이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이 때린 편의 잘못만 이야기하지 않고 ‘맞은 편이 힘도 없으면서 싸움을 도발하다가 심하게 맞았다’고 비난하는 상황이 억울해서 다시 싸움을 도발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는 제대로 반격해주겠다고 공언하면서. 이런 경우 도발에 넘어가지 않는 것이 개인 수준의 싸움에서도 상책이다.

지난 12월 6일 워싱턴 외교장관회의에서 한, 미, 일이 확정한 ‘6자회담 재개 전제조건 5가지’를 둘러싸고 여러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필립 크롤리 미 국무부 공보차관보는 12월 16일 정례브리핑에서 ①도발행위 중지 ②역내 긴장완화 ③남북관계 개선 ④2005년 공동성명에 입각한 비핵화를 위한 긍정적 조치 ⑤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따른 국제적 의무 준수 등을 북한이 이행해야 할 의무사항으로 제시했다.

물론 이는 미국의 입장을 밝힌 것이고 3국이 합의한 내용은 이것에서 약간 달라졌다고 한다. 문제는 여기서 ‘①도발행위 중지’가 이제 북한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려고 도발하는 주체는 북한이었지만 이번 포격훈련을 통해 남한의 도발 의지가 상당히 부각되어 버렸다. 미국도 적극 말리지는 않았지만 싸움의 빌미가 될 수 있다고 자제할 것을 요청하였고 중국과 러시아는 적극적으로 훈련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남한 정부는 훈련을 강행하여 전쟁의 도발책임이 이제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에게도 있다는 인식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앞으로 진행될 한반도 평화를 위한 일련의 흐름에서 남한 정부의 입장이 매우 난처하게 되었다. 반면 북한은 자신들의 호전적인 이미지를 남한에게 넘겨줌으로 인해 자신들의 대화의지를 더욱 강조하기 쉽게 되었다. 싸움은 잘하는 것보다 싸울 상황이라 하더라도 싸움을 하지 않고 이기는 것이 고수이고, 아예 싸움할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것이 이보다 더 뛰어난 고수라는 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