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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로 본 북한 과학기술의 역사

16. 북 최초의 컴퓨터 ‘9.11형 만능 전자계산기’

북 최초의 컴퓨터 ‘9.11형 만능 전자계산기’


강호제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소장) (Institut für Koreastudien Freie Universität Berlin, Affiliated Fellow)


이번에 과학원에서 만든 ‘9.11형 만능 전자계산기<입출구 장치> <연산정치> <조종장치> <기억장치> <전원장치>라는 5개의 장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만일 어떤 숫자를 입력을 하고 어떻게 계산하라고 명령을 하면 전자계산기가 알아서 스스로 계산을 순식간에 한 다음, 그 결과물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어떤 계산을 알아서 해준다는 이야기입니까? 뭐든지 명령하기만 하면 다 되는 건가요?”


원칙적으로는 맞지만, 그런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맞는 프로그램이 미리 마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명령이 내려지면 전자계산기는 아주 빠르게 계산을 수행합니다. 1초에 2000~2500번이나 가감승제 계산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우와...! 그럼 계산하는 시간이 엄청 단축되겠네요. 사람이 할 때보다 몇 천 배, 몇 만 배 빠른 속도로 계산을 할 수 있겠군요.”


그렇지요. 인민경제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계산해야 할 양이 앞으로 급속히 늘어날 것입니다. 따라서 전자계산기 수준을 높이는 것이 인민경제 발전에 아주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나아가 인민경제에서 부분적 자동화를 거쳐 종합적 자동화를 실현해 나가기 위해서도 이는 필수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대화는 1970, 80년대가 아닌 1962년에 전국 10여 곳에서 진행된 수리운영학 강습회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당시 과학원 물리수학연구소 계산수학연구실은 19619월에 열린 4차 당대회 개최시기에 맞추어 북 최초의 컴퓨터, ‘9.11형 만능 전자계산기를 만들고 이듬해부터 과학지식보급회와 함께 전국 10여 곳에서 4~5일 동안 강습회를 진행하였다. 단순히 행사 기념을 위한 전시용이 아니라 생산 자동화라는 목표를 위해 전자계산기를 제작하고 이를 생산현장에 도입해 쓰기 위한 노력이었다.


당시 제작된 컴퓨터는 2세대 컴퓨터로 넘어가는 단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500여개의 진공관과 반도체를 함께 사용하였고 1024개의 숫자를 기억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서양에서도 1950년대부터 컴퓨터에 반도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므로 북의 컴퓨터연구 역사는 상당히 빠른 편이라 할 수 있다.


‘9.11형 만능 전자계산기를 제작할 계획을 짜기 시작한 것은 1959년부터였다. 이는 1957년부터 시행된 과학발전 10개년 전망계획(1957-1966)’을 전면 수정하면서 확정된 것이었다. 생산현장에 대한 과학기술 지원활동이 더 필요했지만 당시 북 지도부는 소련의 지원을 받지 않고 독자노선을 추구하겠다고 결정하였기 때문에 1957년 후반부터 1958년까지 이전의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였던 것이다. 특히 1958년부터는 현지연구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과학원 성원들이 생산현장으로 투입되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었기 때문에 기술혁신을 통한 경제발전에 대한 기대치가 훨씬 높아진 상태에서 새로운 계획이 마련되었다. 기술혁신, 기술혁명은 15개년계획에 뒤이어 1961년부터 시작된 17개년계획의 핵심 목표로 제기되었는데 흔히들 오해하는 것처럼 단순한 선전, 선동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처럼 실질적인 차원의 일이었다. 많은 연구자들이 간과하고 있지만 북한은 과학기술계를 중심으로 기술혁신, 기술혁명을 위한 여러 가지 계획들이 상당히 구체적인 수준에서 진행되었고 일부는 실제 생산에 도입되어 성과를 내고 있었다.


1959년 새롭게 개정된 과학발전 10개년 전망계획에 전자계산기 제작 계획이 포함되었고 이를 위해 과학원 산하 물리수학연구소에서는 계산수학 그루빠[그룹]’(이후 계산수학연구실로 정규조직화되었다.)라는 특별 연구집단을 꾸리고 19598월까지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세웠다. 실행 계획에는 전자계산기의 제작 및 운영에 대한 계획뿐만 아니라 이 부문의 기성 간부가 없는 실정을 고려하여 필요한 수의 조수와 부수들을 배치하여 제작하는 과정을 통해 체계적으로 전문가를 양성할 계획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전자계산기에 들어갈 반도체의 연구와 생산을 위한 반도체 연구실도 새롭게 꾸려졌다. 이와 동시에 과학원 산하 공학연구소에 생산자동화 사업을 위한 자동화 연구실’(이후 자동화 및 기계화 연구소로 분리되었다.)이 꾸려졌고 이곳에 우수한 실력의 대학졸업생들을 우선적으로 보냈다. 전자계산기 제작이 생산의 자동화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북 최초의 전자계산기를 실제로 조립하기 시작한 것은 19616월부터였다. 4개월만인 19619월에 조립이 완료되고 연말까지 약 3개월 간 시운전이 진행되었다. 이 기간 동안 계산수학연구실에서는 운영방법에 대한 연구를 진행함과 동시에 관련 지식을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한 지식보급사업을 전개하였고 11월에는 󰡔과학적 사업 조직방법으로서의 수리운영학󰡕이라는 책도 출판하였다. 이러한 연구결과들을 이후 교통성, 평양 전기공장, 대안 전기공장, 희천 기계공장, 청산리 농업협동조합 등 생산현장에 직접 나가 실지 도입하면서 현실 적응력 및 대응력도 키워나갔다.


‘9.11형 만능 전자계산기제작 경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승, 발전되어 1969년에는 수자형 만능전자계산기 전진-5500’이 제작, 완성되었다. 또한 관련 연구자들은 1970년대 들어 프랑스로 유학까지 보내졌다. 유학 갔다 돌아온 관련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1980년대 초에 북은 중국으로부터 어렵게 구한 유닉스 컴퓨터를 역설계방식으로 자체적으로 제작, 생산하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곧바로 유행하기 시작한 PC로 인해 상품화로 이어지지는 못하였다. 만일 PC가 조금만 더 늦게 유행했더라면 북에서 제작한 유닉스가 전 세계로 수출될 수도 있었을 지도 모른다.


오늘날 과학기술 분야들 중에서 북의 실력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분야가 바로 IT분야이다. 물론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 기술이 더욱 인정받고 있지만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하드웨어 기술도 만만치 않은 역사와 저력을 갖고 있다. 최근 발사한 인공위성과 그 발사체를 자체적으로 제작, 운영하였다고 하는데 그 속에 들어있는 IT기술은 이처럼 오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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