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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2) 과학기술로 북한읽기 3

[2019 신년사] 다수확농장원은 개인농의 출현 혹은 집단주의의 후퇴인가?

[2019 신년사] 다수확농장원은 개인농의 출현 혹은 집단주의의 후퇴인가?


2019년 신년사에 농업과 관련한 지난해 성과를 이야기할 때,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하였다. 


"농업부문에서 알곡증산을 위하여 이악하게 투쟁한 결과 불리한 일기조건에서도 다수확을 이룩한 단위들과 농장원들이 수많이 배출되였습니다."


농업부문에서 성과가 있었다는 표현과 함께, '개인'을 뜻하는 '농장원'이 거론된 것이다.

이를 두고 북한학 박사이자, 전 통일부 장관까지 지내신 분이


"‘협동농장’으로 상징되는 북한의 기존 사회주의적 집단주의 농업 방식에서 생산·분배 단위로서 개인(농장원)은 존재할 수 없다. 집단주의에 반하기 때문이다. 농장, 작업반, 분조가 있을 뿐이다"


라고 하면서 


"개별 농민이 생산과 분배의 기본단위가 되는 구조적인 농업개혁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를 공식화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글을 일간지 칼럼으로 올렸다. 


과연 그럴까?


북한이 '집단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개개인을 강조하는 것이 완전히 금지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1950년대 천리마운동이 전개되던 당시, '길확실'이라는 작업반장 '개인'을 부각시키면서 천리마운동, 천리마작업반 운동을 전개하였고, 

'로력영웅'이라는 칭호도 있을 정도로 개인에 대해서도 거론한다. 


이번 '다수확농장원'이라는 말은 개인농의 출현이기보다 농업부문의 혁신가, 그것도 다수확부문에서 혁신을 이룬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노동자들 중에서 '혁신'에 성공한 사람을 '로력혁신가'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농민들 중에서 '다수확'에 성공한 사람을 '다수확농장원'이라고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수확농장원'이라는 말은


2017-05-17 로동신문 기사에 처음 언급되었다. (로동신문 기사 중에서)


"농장일군들은 농장적으로 2개 작업반을 다수확작업반으로, 매 작업반마다 1개 분조를 다수확분조로 선정하였다.그리고 매 분조마다 1명씩 모범적인 농장원들을 다수확농장원으로 내세웠다."


북한의 정책 집행 특징 중에, 모범을 만들고 이를 확산시키는 방식이 있는데 

'다수확'을 위한 모범으로 '다수확작업반' '다수확분조', '다수확농장원'을 선정하였던 것이다. 


여전히 농사일은 개인이 아니라 작업반, 분조라는 단위로 진행되고 있다. 홀로 일하는 '개인농'은 아직 출현하지 않은 것이다.


2017-06-10 로동신문 기사에는 


“증산군당위원회에서는 지난해 분조장사업을 하면서 담당한 포전에서 다수확을 거둔 금송목화전문협동농장 제6작업반 2분조장을 포함한 4명의 다수확농장원들의 사진을 군영예게시판에 게시하여 널리 소개선전하였다.또한 군안의 농촌당조직들에서 350여명의 다수확농장원들과 로력혁신자들을 농장, 작업반영예게시판을 통하여 소개선전하도록 함으로써 대중의 열의를 북돋아주었다.”


라는 언급이 나왔는데, 

다수확농장원과 로력혁신자들이 동급으로 거론되었다. 


2016년 7차 당대회 이후 농업 부문의 가장 큰 목표는 '다수확'이었다. 

그래서 이를 적극 추진하는 과정에서 '다수확농장원'을 앞세운 것이다. 


북한학 박사이면서 전 통일부 장관인 분이 북한의 집단주의, 혹은 노력영웅, 혁신가에 대한 이해가 없었을 리는 없는데, 이런 실수를 한 것은 북한의 변화 그것도 사회주의 체제 자체의 변화를 바라는 마음이 너무 앞섰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시장과 시장체제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 시장이 등장하면 북한 사회 나아가 경제시스템 전체가 마치 시장체제로 바뀌었다고 해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을 거론하는 모습만으로 북한의 집단주의의 후퇴로 해석한 것은 아닐까 싶다. 북한 사회의 개혁, 변화를 너무 갈망한 나머지...


그리고

최근에는 로동신문, 민주조선을 비롯한 신문은 물론, 경제연구 등의 학술지들도 북한에서 직접 데이타베이스를 만들어 공개하고 있는데 이를 조금만이라도 이용하여 생각을 다듬었으면 이런 실수도 안 했을 듯하다. 


북한이 만든 데이타베이스에서 '다수확농장원'을 검색하면

뉴스에서는 24건, 저널에서는 0건이 검색된다. 

너무 많으면 읽기 힘들겠지만, 24건밖에 안 되니 금방 훑어볼 수 있다. 


예전에야 데이타베이스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기사를 직접 읽고, 메모하고, 기억해야만 

어떤 용어, 어떤 개념이, 언제 나왔는지 알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비슷한 개념과 용어로 검색만 해보아도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언제부터 쓰였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이 데이타베이스는 전 세계에서 남한 내부에서만 쓰지 못하고 있다. 모든 북한 자료들과 마찬가지로. 심지어 북한 전공자이지만 이 데이타베이스의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