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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로 본 북한 과학기술의 역사

24. 처음으로 강성대국 대문에 들어선 마을 '3월5일청년광산'

처음으로 강성대국 대문에 들어선 마을 '3월5일청년광산'



강호제

(협)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소장,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소장,


1954년 어느 날, 전쟁 시기 중국 길림성으로 피난갔던 리종만이 귀국하여 김일성 주석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리종만은 전국 각지에 10여 개의 큰 광산과 수백 개의 광구를 가진 대동광업주식회사’, ‘대동광산조합과 수백 만평의 토지를 가지고 당시로선 파격적인 3:7 소작제를 시행한 대동농촌사’, ‘대동출판사’, 그리고 평양의 대동공업전문학교대동콘체른이라 불린 총 5개 거대 사업체의 수장을 지낸 일제 시기 대표적인 사업가 중 한 사람이다. 1949년 평양에서 열린 조국통일 민주주의 결성대회에 조선산업건설협의회 회장 자격으로 월북했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 그는 애국열사릉에 안치된 유일한 자본가 계급 출신이다.


 

객지 생활이 많이 불편하셨지요?”


아닙니다. 모두들 힘들었을텐데 잘 챙겨주어 불편함 없이 지냈습니다.”


그래도 자기 집이 아닌 곳에서 지내기가 쉽지는 않으셨을텐데요... 그나저나 제가 선생님을 급히 만나자고 한 것은 선생님께 의논드릴 일이 있어서입니다.”


? 무슨 일인가요? 제가 할 수 있는 한 성의껏 답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본격적으로 전후 복구 건설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자니 구리가 많이 필요하네요. 일본 놈들이 패망하면서 다 부셔버린 공장과 광산을 겨우 복구시켜 돌렸다 싶었는데 이번에 미국 놈들이 다시 모두 부셔버렸습니다. 이것을 복구하자니 많은 자재와 원료가 필요합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시급한 것이 구리인데 한 톤도 좋고 두 톤도 좋으니 있는 것을 다 파내서 써야겠습니다. 선생님은 오랜 세월 광산일하셨으니 어디에 구리가 많이 묻혀 있었는지 아실 듯해서 여쭈어보는 겁니다.”


, 그 문제라면 자신있게 대답해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해방 전에 대동광업주식회사를 경영할 때 북부일대의 여러 지대를 돌아다니면서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기억으로 북부지역의 학성산에 동광석이 대략 20만 톤이나 매장되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구리뿐만 아니라 금도 많이 묻혀 있을 것이라 예상됩니다.”


그렇군요. 학성산이라면 자강도 중간군에 있는 그 산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당장 그곳으로 탐사대를 파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아닙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뭐든 도와야지요. 탐사대가 꾸려지면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그래도 제가 예전에 조사했던 곳이니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겠지요.”


 

아직 지질탐사사업을 대대적으로 시작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김일성은 광산업에 일가견이 있는 리종만에게 의견을 구했고 그의 의견을 따라 학성산을 중심으로 탐사사업을 진행시켰다. 중공업성 지질탐사관리국장을 중심으로 꾸려진 탐사대는 리종만을 고문으로 위촉하여 자강도로 향했다. 하지만 리종만이 지적했던 학성산에서는 구리광맥을 찾지 못하고 우여곡절 끝에 그 주변 지역에서 결국 구리광맥을 찾아 광산을 건설할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35일청년광산이다. 이곳에서는 구리, 금뿐만 아니라 스테인레스나 베어링 등 특수강을 만들 때 쓰이는 몰리브덴도 많이 매장되어 있다. 대부분 노천광 형태여서 이용가치가 아주 높은 곳이다20109월 초, 김정일 위원장이 예정했던 당대표자회를 개최하지 않은 상태에서 현지지도를 떠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곳이 바로 ‘35일청년광산이었다.


당시 광산촌을 방문한 김정일 위원장은 ‘35일청년광산의 발전된 모습을 보고 여기는 선군시대에 태어난 인민의 무릉도원이고 공산주의 선경이며 리상촌이라고 하면서 최상의 기쁨과 만족을 표시하였다고 한다. 20081월에도 이곳을 현지지도하면서 자력 발전하는 모범을 만들고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당시 5~6년 기한으로 제시한 과제를 2년 만에 목표를 돌파하여 생산량을 3배 끌어올렸기에 이번에 더욱 극찬한 것이었다.


그후 2년 동안 ‘35일청년광산은 노천 채굴장을 층층으로 전망성 있게 바꾸었고 채굴설비들의 대형화를 실현했다. 그리고 광석채굴로부터 운반, 마광, 선광 등 모든 생산공정의 ‘CNC가 실현되어 노동자들이 유해로동에서 벗어나 설비감시나 하면서 일을 쉽고 즐겁게 할 수 있게 바꾸었다고 한다. 게다가 원추파쇄기, 마광기, 선별기들은 밀폐되거나 제진장치가 부착되어 선광장에는 먼지 한 점 날리지 않게 바뀌었다. 2중으로 건설된 침전지는 물 오염을 방지하여 물고기가 살 수 있는 맑은 물만 압록강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하였다. 또한 강에서 퍼올려 선광장에서 쓰고 난 물은 다시 강으로 떨어지면서 자체 발전소를 가동시켜 전기를 발생시키게 설계되었다. 환경 문제와 에너지 재활용 문제까지 해결한 것이다.


2010년 현지지도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생산공정의 현대화, 과학화에서는 물론, 환경조성사업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크게 자랑할만한 표본광산, 본보기광산이라고 하면서 모든 단위들에서 이들의 모범을 적극 따라배워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모든 면에서 여기는 강성대국 리상촌으로서의 체모를 완전히 갖추었다는 뜻이었다. 이에 2010105일자 로동신문은 백만점리상촌이 펼쳐졌다!”는 정론 기사를 발표하였다. 이 기사에는 처음으로 광산은 분명 강성대국의 대문 안에 들어섰다.”라는 완료형 문장이 쓰였다. 항상 2012년을 기점으로 강성대국 건설의 대문을 열겠다는 식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 이야기하다가 그 목표를 완전히 달성한 모범이 창출되었다는 선언으로 바뀐 것이다.


‘35일청년광산이 강성대국 대문에 들어선 첫 번째 모범으로 인정받았으니 이를 자세하게 분석하면 북의 경제발전전략과 실행과정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보만을 바탕으로 분석해보면 ‘35일청년광산은 대략 3가지 특징이 두드러진다. 우선, 최근 경제적 가치가 급상승하고 있는 비철금속(유색금속)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는 점과 CNC기술을 비롯한 생산과정의 현대화, 과학화에 성공하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혁신들을 한두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속비약, 계단비약이라는 말로 표현될 정도로 연속해서 혁신했다는 것이다. 급격한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2010년 9, 김정일 위원장이 자강도로 현지지도를 나갔던 이유 중 하나가 2012년을 향해가는 길목에서 3차 당대표자회를 여는 만큼 강성대국 건설의 구체적인 성공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함도 있었던 것이다.


(과학기술로 북한읽기1, 2016, 알피사이언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