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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로 북한의 오늘과 내일 읽기

7. 자동수자조종장치(CNC)와 경제발전전략

자동수자조종장치(CNC)와 경제발전전략



강호제

(NKTech.net 큐레이터, 극동문제연구소 객원연구위원)



"금속 덩어리를 투입구에 올려놓고 시작 스위치를 누르면, 로봇팔은 미리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자동으로 금속 덩어리를 산반 위에 고정시키고 필요한 공구를 회전축에 부착한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공구는 티타늄과 같은 매우 강한 재질로 되어있어 금속 덩어리가 이것과 닿으면 쉽게 깎여나간다. 공구는 필요에 따라 중간 중간 교체된다. 금속 덩어리를 올려놓은 선반은 컴퓨터로 계산된 결과에 따라 전후, 좌우, 상하로 움직이거나 좌회전, 우회전 등을 하면서 깎여나갈 부분을 절삭 공구에 가져다 댄다. 공구 주위 여러 곳에 배치되어 있는 각종 센서들은 작업 상태를 실시간으로 측정하여 설계대로 제작되고 있는지를 점검한다. 금속이 깎이는 동안 열이 많이 발생하므로 공구 옆에 붙은 호스에서 물이 계속 뿜어진다. 주변으로 튀는 부산물을 막기 위해, 그리고 작업공간의 온도를 일정하게 제어하기 위해서 작업공간은 투명한 판으로 밀폐되어 있다. 몇 분간의 작업 끝에 CNC기계는 투박한 금속 덩어리를 정밀한 엔진으로 바꾸어 투입구로 다시 내어놓는다."

 

2010년 신년사설에는 아주 드물게(아마도 거의 처음) 영어 알파벳이 등장하였다. ‘CNC, CNC기술이라는 말인데 이는 ‘Computer Numerical Control’의 약자로 이전까지 자동수자조종장치로 불리던 것이다. 이는 컴퓨터를 통해 각종 정밀 기계부품 제작과정을 자동화시키는 기술을 의미한다. 위의 장면은 CNC 공작기계가 정밀 부품을 가공하는 장면이다.


사람이 직접 각종 부품을 조작하여 부속을 만드는 과정은 정밀도의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작업속도 또한 매우 더딜 수밖에 없다. 또한 사람의 감각에 의지하는 것이므로 정밀도를 일정하게 보장하기란 쉽지 않다. 무엇보다 고도로 숙련된 기술자가 필요하므로 정밀한 부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며 생산 단가도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사람 손이 아니라 컴퓨터를 통해 전 과정을 자동으로 제어하는 방법이 발전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설계에서부터 제작, 검수까지 전체 작업공정을 컴퓨터를 이용함으로써 높은 정밀도를 보장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동화를 통해 작업속도 또한 몇 배에서 몇 십 배로 높일 수 있게 되었다.


2010년 초에 북에서 상품화에 성공한 제품인 ‘5, 7CNC 공작기계2~3CNC기술과 수준이 달라 2계통, 3계통 기술이라고 별도의 단계로 분류된다. 축의 수가 늘어날수록 작업대상을 더욱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게 되고 주축의 회전수도 더욱 높아져야 하기 때문에 더욱 높은 수준의 기술이 요구된다. 전 세계에서도 일부 국가에서만 개발하였고 남측 기업에서도 아직 개발 단계에 있는 기술 수준이라고 한다. 1990년대 후반 라남의 봉화로 유명해진 라남탄광기계연합기업소에서 자력으로 제작한 자동 금속가공기계의 정밀도가  1µm(10의 -6승 m) 수준이었는데 최근 CNC 공작기계는 이것의 10배인 0.1µm(10의 -7승 m) 뛰어넘었다고 한다. 정밀도가 10배로 바뀐다는 것은 만들 수 있는 기계의 수준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기계에서 공작기계, 그리고 자동차에서 비행기, 그리고 우주발사체로 점차 수준이 올라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기계제작 기술의 최첨단이라고 할 수 있는 CNC기술 개발은 최근 북에서 주장하는 경제발전전략, 즉 선군시대 경제발전전략인 국방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고 농업, 경공업을 동시에 발전시킨다는 정책의 구체적 실천 사례이다. 1962년 국방-경제 병진노선의 채택 이후 집중적으로 육성한 국방공업 부문은 최첨단 과학기술을 요구하는 부문이면서 많은 인적, 물적 자원을 요구하는 부문이므로 이를 우선적으로 발전시킨 후 그 성과를 일반 경제부문으로 이전시켜 경제 발전속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200942차 인공위성 시험발사 이후, 이 부문에 대한 실질적 책임자였던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 주규창이 국방위원으로 임명되는 모습에서 앞으로 국방공업에서 개발한 기술들이 민수기술로 전환되는 흐름이 빨라질 것이라 예상할 수 있었는데 주체식 CNC기술의 개발 선언이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인공위성 발사체 제작 기술이란 기계제작 기술 중에서 가장 앞선 기술들의 집합이다. 인공위성 발사체 제작 기술을 보유한 나라의 수가 5축 이상의 CNC 공작기계를 제작할 수 있는 나라의 수처럼 10여개 안팎이라는 사실은 두 기술이 같은 수준의 최첨단 기술임을 이야기해준다.


과학기술 발전을 통한 경제발전 전략이 제기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후반부터 북에서는 생산현장의 기술개건사업, 즉 생산현장의 기술수준을 높이는 사업이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이전 시기에도 생산활동의 기술혁신이 주창되었지만 당시에는 생산활동과 기술혁신을 병행할 것을 요구하였고 최근에는 생산활동보다 기술개건사업을 앞세우도록 하고 있다. 즉 생산을 잠시 중단하더라도 새로 도입할 기술수준이 월등히 높기 때문에 중단된 생산활동에 대한 보충을 충분히 할 수 있기 때문에 기술개건사업에 더욱 집중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때 거론된 새로운 기술 중 하나가 생산의 자동화였다. 이번 신년사설에서 언급한 CNC기술은 생산의 자동화와 관련한 가장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사례였다.


앞으로 북은 공작기계의 CNC화 이후, 일반기계의 CNC화와 생산라인의 CNC화를 넘어 공장 전체의 CNC화 즉 생산활동의 전면적인 자동화를 실현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분명 원천기술의 보유가 산업 전반에 대한 성공적인 적용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CNC기술의 개발과 생산현장의 자동화 사이에는 넘어야할 산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일반 생산현장의 기술 수준은 CNC 기술에 비해 상당히 뒤떨어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도 북이 보유하고 있는 CNC기술이 공개된 이후, 기술혁신을 통한 경제발전전략의 성공가능성이 좀 더 높아진 것 또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