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북한 과학자 인물열전

7. 주종명-“대담하게 생각하고 대담하게 실천하자.”

주종명-“대담하게 생각하고 대담하게 실천하자.”



강호제

(NKTech.net 큐레이터, 극동문제연구소 객원연구위원)



1955년 어느 날, 김책제철소에 설치된 과학원의 임시사무실로 누군가 다급하게 뛰어들었다.



연구사 동무, 용광로가 이상합니다. 온도가 내려가고 있어요.”


? 그럴리가요. 같이 가 봅시다.”



당시 김책제철소에는 과학원 화학연구소에서 파견한 과학기술자들이 현장에서 직접 새로운 제철공법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그들은 함철콕스 연구팀을 꾸리고 코크스를 적게 쓰는 방법, 100% 수입에 의존하는 코크스탄 대신 북한에 무진장 매장되어 있는 무연탄을 이용해서 강재를 생산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강재 생산의 자립화를 위한 연구였다. 당시 연구팀 책임자는 김책공대를 졸업하고 1952년부터 함철콕스 연구를 시작하였던 주종명이었다. 긴급호출을 받은 주종명이 급히 용광로로 달려가 보니 용광로 온도는 계속 내려가고 있었고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결국 용광로는 멈춰버리고 말았다. 전국에 몇 개 안되는 용광로 중 하나가 작동을 멈춘 것이다.


공업화 연구는 대개 실험실적 연구를 끝낸 다음, 실제 생산설비에 도입하기 전에 중간공장(pilot plant)을 만들어 생산도입시험을 거친다. 실험실에서 제대로 구현된 이론이라도 생산 규모가 달라지면 각종 조건들을 제대로 조절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공업화 규모를 단계적으로 올리면서 점검한다. 이번 용광로가 멈춰버린 사고는 중간시험단계를 거치고 마지막으로 생산도입시험을 하다가 발생한 것으로 규모가 달라짐에 따라 재료의 배합비율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전적으로 과학기술자들의 잘못이었다.


이로 인해 연구를 책임지고 있었던 주종명은 강하게 비판받았다. 그런데 비판 내용은 배합비율 계산실수나 생산 계획에 차질을 빚은 것을 넘어 함철콕스 연구를 시작한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으로 이어졌다. 선진국 어디에도 코크스를 쓰지 않고 강재를 생산하는 곳이 없는데 산업 수준이나 과학기술이 뒤떨어진 우리가 그러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수 없다는 비판이었다. 이는 당시 경제발전노선으로 채택된 자립경제노선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졌다. 주종명은 자신의 실수로 인해 제철공업의 자립화노선까지 비판받고 있는 사실이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었다.


강재 생산은 국가경제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제철소에서 발생한 모든 사항들은 최고 지도부에 보고되었고 그 결정에 따라 처리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제철소 지도부는 사고 뒷수습을 끝낸 다음 최고 지도부의 처분을 기다렸다. 주종명 본인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번 사고로 인해 국가적 차원에서 막대한 손실을 일으켰으므로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과학기술자들이 상당한 제재를 받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김일성의 최종 결정은 뜻밖의 내용이었다.



과학자들이 비록 큰 실수를 해서 국가적으로 손해를 일으키긴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제철공업의 자립화라는 당의 노선을 충실히 따르다가 생긴 일입니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다보면 실수를 하기 마련입니다. 실수할 때마다 책임을 추궁하고 제재를 가한다면 누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덤비겠습니까? 우리 과학자들은 잘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연구를 더 잘하도록 우리는 믿어주고 밀어주어야 합니다.


로사고를 내고 추궁을 받았다니 그새 정신적 타격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이번 사고도 지금까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만 하다가 낸 것입니다. 다시 본격적인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외국으로 휴양을 보내서 푹 쉬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국내에 그대로 두면 머리를 계속 쓸 수 없겠습니다. 다른 사람은 못 보내더라도 주종명 동무만은 국제휴양에 꼭 보내시오.”



김일성을 비롯한 최고 지도부는 과학자들에게 제재를 가하지 말고 오히려 과학기술자들을 해외 휴양지에 보내 한숨 돌리게 해서 다시 연구에 매진할 수 있게 도와주라는 결정을 한 것이다.

김일성은 일찍부터 과학기술의 발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경제발전, 특히 공업화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더욱이 자체 연료, 자체 원료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기술개발에 성공하지 못하면 자립경제노선을 추구할 수 없게 되므로 과학기술자들의 협력은 더욱 절실한 것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 개발은 성공확률보다 실패확률이 더 높은 것이므로 과감하게 도전해보려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평가는 계획을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에 따른 것이므로 기존의 방법을 잘 따르기만 해도 계획수행에 어려움이 없고 최종평가를 잘 받을 수 있는데 굳이 새로운 방법을 개발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전후복구사업을 끝내고 본격적인 경제발전계획을 추진할 당시, 북한 지도부는 기존의 방법을 고수하려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새로운 시도를 채택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많은 고민을 하였다. 이에 마련된 논리가 대담하게 생각하고 대담하게 실천하자라는 것이었다. 자잘한 실수는 넘어가 줄 수 있으니 새로운 시도,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데 주저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기술혁신을 장려하기 위한 논리다.


사실 주종명과 같이 용광로를 망치고 강재 생산에 큰 차질을 빚은 실수는 책임 추중과 함께 제재가 가해져야 할 만한 사항이었지만 당시 상황에서 제재를 가했다면 누구도 선뜻 기술혁신에 도전하지 않으려고 했을 것이다. 말로는 기술혁신이 필요하다고 인정해도 정작 본인에게 올 추궁이 무서워 최대한 회피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시 본격적으로 시작한 경제발전계획은 달성될 수 없었고 자립경제노선 또한 지킬 수 없었다. “대담하게 생각하고 대담하게 실천하자는 논리는 실수에 대해 최대한 관대하게 처분한 이러한 사례와 함께 많은 사람들을 기술혁신의 길로 유도하였다. 그리고 이 논리는 김일성의 통큰 정치스타일을 상징하는 것으로 확대되어 사용되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만들어진 스타일의 일반화이다.


결국 주종명은 1958년에 무연탄을 이용하는 제철법을 완성하여 황해제철소에 도입하였고 이를 인정받아 1959년에 1회 인민상을 수상했다. 당시 주종명이 개발한 방법은 기존의 방법에 비해 생산성이 135% 향상되었고, 코크스는 23% 절약하였다고 한다. 북이 제15개년계획을 높은 수준에서 기한을 앞당겨 실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기술혁신들의 성공이 있었다. 북에서는 주종명이 개발한 새로운 제철법에 주체의 의미를 부여했고 지금까지 계속 이러한 방법의 완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무진장한 무연탄으로 제철을 하는 것은 제철공업에서 주체를 세우는 것으로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