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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동향 브리핑(이대 통일학연구원)

북중 군사동맹의 변곡점 (2010년 10월 25일 ~ 2010년 10월 31일)

지난 10월25일 북한 평양의 평양경기장에서는 한국전쟁 60주년 중국참전 대표단 환영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에 김정일 위원장과 김정은이 나란히 참석하여 사람들의 주목을 많이 끌었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차기 중국 최고 지도자로 떠오른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한국전쟁을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언급하여 많은 논란이 빚어졌다. 한국전쟁이 남침이냐 북침이냐와 관련한 논란이 중심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이 많이 간과되었다. 최근 북한과 중국의 군사교류 상황을 살펴보면 북중 군사동맹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이 명시적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지난 8월 말,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이런 변화의 중심에 놓여있었다는 분석이 이로써 상당히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시기를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기라고 부른다. 이 시기 북한의 경제상황은 아주 힘들었는데, 김정일 위원장을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 불멸의 향도 시리즈에서도 당시의 어려운 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정도로 북한은 당시의 어려운 상황을 솔직히 시인하고 있다. 문제는 당시의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된 이유에 중국도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모두 무너졌던 당시, 국경을 맞대고 있던 중국은 북한에 대해 이전 수준의 대우는커녕 북한을 홀대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북한에 수출하던 물품가격을 시세보다 높게 책정하기도 했고 특히 당시 첨예하게 대립하던 북미 핵분쟁 과정에서 한발 물러나 있는 듯한 태도를 취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사실 항일무장투쟁 시기부터 돈독한 협력관계였던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1차적으로 1956년 ‘8월종파사건’을 계기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북한 지도부 안에서 김일성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세력들이 중국을 등에 업고 김일성 세력에게 반기를 들려다가 일어난 당시 사건의 뒤처리 과정에서 중국 정부가 내정간섭 수준까지 개입했기 때문이다. 이는 이후 중국의 사과로 무마되었지만 1960년대 후반,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계기로 북중 관계는 극심한 대결 상태까지 치달았다. 당시 홍위병들은 김일성에 대해 험한 비난을 쏟아냈고 이에 북한이 격하게 반발하였던 것이다. 1976년 문화대혁명이 막을 내리고 중국이 개혁, 개방으로 노선을 수정함에 따라 북중관계는 명목상의 동맹관계에만 머물러 있었다. 게다가 1992년 중국이 남한과 수교함에 따라 더욱 관계가 소원해졌다. 더 이상 혈맹관계라는 말은 쓰이지 않았고 그저 정상적 국가관계라고만 불렸다. 소원한 북중 관계는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급격히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국가 대 국가’ 관계에서 ‘당 대 당’ 관계로 격상되었다가 최근 다시 혈맹관계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북중관계, 그 중에서 군사관계 변화의 중심은 지난 8월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 동북지역을 방문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 이유에 대해 많은 분석이 나왔지만 북중 군사협력 강화라는 측면의 분석이 상당히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만히 주목받지는 못하였다.(이에 대해서는 지난 9월 5일자 ‘남북동향 브리핑’에서 언급하였다.) 만주지역은 북한과 중국이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지역이기도 했고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한미 동맹이 강화되어 동북아 안보 위험이 높아지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특히 높아진 안보위험 때문에 서해상의 한미군사 훈련이 강화되어 항공모함까지 서해에 동원될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입장에서는 2012년으로 기점을 잡은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했다. 북미관계 정상화와 남북관계의 개선을 통해 군사, 안보에 대한 부담을 줄여 이를 경제건설로 돌리려던 북한 지도부의 계획이 계속 어긋남에 따라 북한은 중국의 협력이 다각도로 필요했던 것이다. 중국으로부터 경제는 물론 군사적 협력까지 이끌어내어 미리 준비했던 경제발전계획을 차질없이 진행할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하고자 한 것이다.

이번 시징핑 국가부주석의 한국전쟁 발언은 외교적 수사의 문제가 아니라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지난 시기 최고 수준이었던 한국전쟁 시기의 수준, 혈맹관계로 최고조에 달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또한 최근 북한의 거듭된 남북대화 제의를 고려하면 군사, 안보 부담을 낮춰보려는 북한의 노력은 상당히 절실한 측면이 있다. 상대방이 절실히 원할 때 응해 주면 우리의 입지가 더욱 높아질텐데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