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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동향 브리핑(이대 통일학연구원)

후계자 선출과 관련한 논의와 관련하여 놓치고 있는 것 (2010년 10월 18일 ~ 2010년 10월 24일)

3차 당대표자회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논란이 된 이야기는 후계자 문제의 공식화일 것이다. 김정일의 셋째 아들인 김정은이 공식적으로 후계자로 내정되었음이 3차 당대표자회를 통해 드러났고 당대표자회 직후 양형섭과 같은 고위 간부들에 의해 직접 언급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남한 내에서 북한의 세습 문제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런 북한의 문제가 오히려 남한 내부의 문제로 전이되어, 종북주의 논란이 다시 불거진 것이다. 북한의 후계자 문제를 적극 비판하지 않는 사람들의 자세를 ‘종북주의’라고 규정하면서 비판하는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김일성으로부터 3대째 혈연적 관계로 이어진 것을 세습이라고 보고 이것이 명백히 잘못된 것이므로 이를 적극 비판하지 않는 입장이란 ‘북한을 추종한다’라는 의미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바탕에 깔린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인식과 판단과정에는 심각한 모순이 내포되어 있다. 사실관계를 인식하고 이것으로부터 가치판단을 이끌어내는 인지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인간이 사물을 인지하는 과정은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으로 거칠게 나눌 수 있다. 하지만 과학철학자들의 의견에 의하면 이 둘의 구분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떠한 사실판단도 관찰자의 가치체계의 밖에서, 객관적인 조건 위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관찰의 이론의존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구분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어떠한 판단을 내리기 이전에 판단의 결정적인 근거로 작용하는 정보가 최대한 판단 대상의 상황을 잘 대변하고 있는 것인지 면밀히 점검해야 함을 이야기해주기 때문이다. 인간의 인식은 어쩔 수 없이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관찰과 판단에 신중을 기울이라는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자신의 ‘합리성’에 너무 믿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인간의 합리성란 어쩔 수 없이 ‘제한된, 한계를 가진 합리성’일 뿐이라는 것이다.

북한 관련 정보는 어떤 정보보다 불확실성이 크다. 북한 정부 스스로가 정보문제를 안보문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측의 이데올로기적 판단이 상당히 심하게 개입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북한의 현실, 현상과 관련한 객관적인 사실을 담고 있는 듯한 정보도 역추적하다 보면 두세 번 가공된 결과인 경우도 많고, 객관적인 정보라 하더라도 이를 판단하기 위해 필요한 주변조건들이 부족하여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기 힘든 경우도 많다. 어떤 경우보다도 북한 문제와 관련한 판단은 다각도로 점검한 후 내려야 한다. 십자말 풀이와 같이 다양한 측면에서 연결이 되어야만 진실에 가까운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북한이라는 객관적 대상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가상의 대상에 대한 판단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이번 김정은 후계자 내정과 관련한 종북주의 논란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드러난 최대한 객관적인 사실은 김정은이 김정일의 셋째 아들이라는 사실과 그가 향후 김정일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되었다는 것뿐이다. 이러한 과정이 어떻게 일어난 것이며 어떤 판단의 과정 속에서 나온 결론인지 거의 알 수 없다. 분명 이정도만의 사실로 보더라도 남한 사회의 가치체계로 보면 ‘민주적’, ‘합리적’ 결정 과정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북한 내부의 가치체계와 후계자 선출과정에 대한 세부 절차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북한 내부의 가치로도 비민주적이고 불합리하다고 결론내리기에는 아직 미흡하다. 김정일의 아들이 3번째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는 점만으로 모든 사람들의 판단이 하나로 모여야만 한다는 생각은 자신의 합리성에 대한 과도한 믿음에 기인한 판단오류라고 볼 수 있다.

민주사회라고 불리는 국가에서 혈연관계에 의한 권력 승계가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는 사례만으로도 이런 논리는 기반이 심하게 흔들릴 수도 있고, 만일 북한 내부에서 합리적, 민주적 절차를 거쳤다는 근거나 주장이 나오면 또한 이러한 결론의 견고함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밝히지 않은 개인의 가치판단을 임의로 결론짓는 것은 비민주적이라는 우리 사회의 합의사항이 반론으로 제기된다면 3대 세습이라고 비판하지 않은 것을 종북주의로 비판하는 주장은 상당히 비합리적 결론이 되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