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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2) 과학기술로 북한읽기 3

전자업무연구소 - 지방 생산현장에 자동화, 컴퓨터화 담당조직, 리더십 교체의 의미 (NKtech.net 브리핑 기고문)

전자업무연구소 - 지방 생산현장에 자동화, 컴퓨터화 담당조직, 리더십 교체의 의미

 

지방의 기업소 및 생산현장에서 사용될 자동화, 컴퓨터화 업무를 담당할 ‘전자업무연구소’는 2008년 12월 자강도에 처음 설치되었다. 생산활동의 디지털화 작업을 수행하는 단위가 중앙에서 지방으로 확산되는 계기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2008년 12월 16일 김정일 위원장이 자강도 전자업무연구소를 현지지도할 때 김정은 위원장이 수행했다고 되어 있다. 이는 후계자 수업을 받은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김정은 위원장, 2008년 12월부터 김정일 현지지도 동행 

김정은 위원장이 후계자로 내정된 사실이 공표된 것은 2010년 9월에 개최된 3차 로동당대표자회 즈음이었다. 2008년 하반기에 김정일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서둘러 후계자를 내정했다는 것이 당시의 해석이었다. 2009년 중반에 들어서면서 ‘김정운’이라는 이름으로 후계자가 내정되었다는 소문이 돌다가 2010년에 ‘김정은’이라는 제대로 된 이름이 공식적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위원장이 2011년 12월에 사망하였으므로 대략 2~3년간 후계자 수업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2010년 이전 행적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2008년에도 김정은 위원장이 현지지도에 동행한 사실이 가장 먼저 알려진 것은 2010년 12월 자강도 현지지도에 대한 신문 기사와 함께 공개된 사진 때문이었다. 당시 두 사람은 ‘희천련하기계종합공장’과 ‘희천청년전기련합기업소’, ‘희천발전소건설장' 등을 현지지도하였는데, 희천청년전기련합기업소에서 찍은 사진 뒷편에는 2008년 12월 20일에 그곳을 현지지도했다는 현판이 붙어 있었다.1)

 

군수 과학기술을 활용한 경제발전 전략과 관련

북한은 1960년대 중반부터 군수 부문을 일반 민수 부문에서 분리하여 특별 관리하였다. 군수 부문에는 자원이나 자금은 물론 우수한 인력까지 우선적으로 공급하면서 자체적으로 국방력을 갖추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왔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1990년대 경제난 국면에서도 군수 부문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어서 가동상태를 유지한 곳이 많았다고 한다.

2010년대 후반, 전 세계 5~10개 국가만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는 수준의 무기인 SLBM과 ICBM을 북한이 만들어 시험발사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던 경제난을 끝내고 새로운 경제발전 전략을 수립하던 2000년대 초반, 김정일 위원장은 ‘국방공업 우선, 농업-경공업 우선’ 전략을 제시하였다. 군수 부문에서 보유하고 있던 앞선 기술과 인력 등을 적극 활용하여 민수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전략이었다.

자강도는 군수 공업 부문이 집중 배치된 지역이었으므로 이 지역의 현지지도를 김정은 위원장이 동행했다는 것을 공개한 이유는 국방공업 우선 전략을 적극 계승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인 듯하다. 게다가 희천련하기계종합공장은 북한이 자랑하는 첨단기술인 CNC기술을 보유한 핵심 공장이었다. 이를 확대 생산하고 전국으로 보급하여 생산현장의 현대화, 자동화, CNC화를 적극 추진하는 현장을 함께 점검하러 갔던 것이다.

 

2008년 12월 16일 자강도 전자업무연구소 현지지도도 동행

김정은 위원장이 최고지도자 지위에 오른 해(2012)의 12월에 출간된 ‘회상실기 《선군혁명령도를 이어가시며》 제1권’에는 김정은 위원장의 새로운 행적이 공개되었다. 2008년 12월 16일 자강도 ‘전자업무연구소’에 김정일 위원장과 동행한 일을 당시 자강도당 책임비서였던 박도춘이 회상한 글이 실렸다. 자강도 전자업무연구소는 최초의 전자업무연구소였다. 현판에 현지지도한 날짜만 공개된 이전 보도와 달리, 김정은 위원장이 “새로운 프로그람개발에서 나서는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였다.2) 또한 평안북도에도 전자업무연구소를 건물을 신축하여 확장하라는 지시를 하였다.3) 전자업무연구소는 도 단위를 넘어 시/군까지 확대 설치되었다. 이 당시 자강도 전자업무연구소에 대한 현지지도 표식비는 2015년에 만들어졌다.4)

 

프로그램 개발에서 하드웨어 제작까지 임무 확대

련하기계공장이나 희천전기련합기업소처럼 이전부터 있었던 공장/기업소들과 달리, 전자업무연구소는 최근에 새롭게 생긴 곳이었다. “정보산업을 빨리 발전시키고 인민경제의 모든 부문을 정보화”하는 일을 맡기 위한 신생 조직이었다.5) 좀 더 구체적으로는 생산현장의 경영활동, 과학기술활동, 그리고 생산공정의 콤퓨터화를 구현하는 데 필요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주된 임무가 부여되었다.6)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하드웨어 제작도 직접 담당하는 방향으로 업무 영역을 확대했다.7) 생산과 과학기술, 교육의 일체화를 추구하는 북한 과학기술 및 경제발전 전략의 특색에 따라 연관된 업무 영역을 조금씩 확장했던 것이다. 2017년 평안남도 온천군 전자업무연구소에서 ‘휴대용수자식염도측정기’를 만든 것이나 코로나 국면에서 함경북도 전자업무연구소가 ‘소독수 제조기’를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8)

 

정보산업 시대 전국적인 정보화 확산이 목적

전자업무연구소 설치에 대한 근거로 『로동신문』에서는 1999년 즈음 김정일의 지시를 거론하였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은 나라의 정보기술을 급속히 발전시키기 위해 프로그램 개발을 제한된 범위가 아니라 전국적 범위에서 광범히 진행하라고 지시하였다고 한다.9) 평양 혹은 국가 중심의 제한된 시행이 아니라 전국의 도/시/군 수준에서 정보화 사업을 확산시키라는 지시였다. 이를 위한 행정 지원 조직으로 전자업무연구소가 설치되었던 것이다. 1999년 지시 이후 전자업무연구소는 시범적으로 자강도와 평안북도에 마련되어 운영되다가 2008년에 자강도부터 새로운 건물을 지어 확대 강화하였다. 자강도 전자업무연구소는 장자강기슭에 천수백㎡의 연건축면적으로 지어졌고 평안북도 전자업무연구소는 2011년에 3층 규모의 새 건물로 이전했다고 한다.10)

김정일 위원장은 2001년 3월에 21세기가 정보산업의 발달로 이전과 완전히 다른 시대가 된다는 비전을 제시하였다.11) 컴퓨터에 의해 사람의 노동을 대신할 수 있게 되어 육체노동 못지않게 정신노동이 중요해졌다고 역설하였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잘 활용하면 어렵고 힘든 노동에서 사람들이 해방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1960년대 정립된 북한식 ‘기술혁명론’의 핵심인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어렵고 힘든 노동에서 인간을 해방할 수 있다는 논리로 컴퓨터가 가져올 변화를 지적하였던 것이다. 북한은 인민경제의 변화 방향을 ‘주체화, 현대화, 과학화’라고 1970년대에 정리하였는데, 2016년 7차 당대회에서는 정보기술이 가져올 변화를 ‘정보화’라고 규정하면서 기존의 3가지 특징에 추가하였다. 이는 컴퓨터를 적극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 자동화, 무인화를 지향하는 것이었다.12)

 

전국 도/시/군에 전자업무연구소 설치, 도정보화관리국에서 관리

건설과정에서 ‘도체신관리국’과 ‘도전신전화국’의 일군과 종업원들이 자재를 자체적으로 마련하면서 건설사업을 추진하였다고 설명하는 것으로 보아, 전자업무연구소는 2008년 당시만 하더라도 행정적으로 이곳과 연결되어 있었던 듯하다.13)

이후 이들의 업무가 정규화됨에 따라 ‘도정보화관리국’이 새롭게 생겨 그 산하에 전자업무연구소가 들어가는 형태가 되었다고 한다.14) ‘도정보화관리국’은 2015년에 가서야 언론에 등장한 것으로 보아 2009년에서 2014년 사이에 새롭게 설치된 조직이다.15)

군 단위 전자업무연구소가 처음 언급된 곳은 2010년 기사에 등장한 함경남도 흥원군이었고, 시 단위로는 처음 언급된 곳은 2015년 기사의 라선시였다.16) 2017년 기사에는 남포시 천리마구역과 대안구역, 강서구역에도 구역 차원의 전자업무연구소가 처음으로 거론되었다.17)

아래와 같이, 자강도와 평안북도 전자업무연구소에서 만들었다고 소개한 초창기 프로그램 및 성과들의 이름만 살펴보아도 그들의 업무가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2008년 자강도 전자업무연구소

• 강계닭공장 경영업무체계프로그람 《명당》

• 희천공작기계종합공장 경영업무체계프로그람 《봉화》18)

2009년 평안북도 전자업무연구소

• 도송배전부의 전력계통운영체계의 컴퓨터화

• 금진강구창발전소의 발전소집중감시체계콤퓨터화

• 광포오리공장의 경영업무지원체계콤퓨터화

• 함흥세멘트공장 수직로측정감시체계의 컴퓨터화

• 흥남구두공장의 신발사출설비콤퓨터화

• 함흥종합식료공장 공정감시체계콤퓨터화

• 정평군농기계작업소의 유도로조종체계콤퓨터화

• 함주군장공장의 컴퓨터화19)

 

단순한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생산 자동화 및 업무 효율화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데 주력하였던 것이다.

 

2018년 정보기술 부문 기술고급중학교 신설

2012년 9월 북한은 학제 개편을 비롯하여 교육 제도의 개혁을 추구하였다. 의무교육제를 11년에서 12년으로 1년 늘였으며 ‘기술고급중학교’라는 새로운 학종을 만들기로 하였다. 지역의 특성에 맞는 특수교육을 시키는 기술 중심의 직업학교을 새로 설치한다는 결정이었다.

기술고급중학교가 특화한 부문은 2017년 첫 번째 기술학교가 개교할 때까지는 ‘금속, 석탄, 전기, 화학, 농산, 축산, 과수, 수산’ 8개였다. 하지만 2018년에 들어서면서 ‘정보기술부문' 기술고급중학교가 새롭게 만들어졌다. 원래는 ‘광업, 기계공업, 잠업’ 3개 부문의 기술고급중학교가 추가로 설치될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계획이 변경된 것이다.

 

정보기술고급중학교 설치는 전자업무연구소와 연관

아마도 이러한 계획 변경 사정에는 전자업무연구소의 확대 강화 정책이 있었을 듯하다. 2018년은 전자업무연구소에 대한 첫 현지지도 10주년이 되는 해였기에 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준비하다가 기술고급중학교 설치 계획을 급변경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생산현장의 정보화’ 정책을 이어받았다는 메시지를 만든 2008년 자강도 전자업무연구소의 의미를 되새기다가 인력양성체계까지 바꾸었던 것이다.

다른 부문과 달리 정보기술부문 기술고급중학교는 지역을 특정하지 않고 전국 시/군 모든 단위에 설치한다고 한다. 전국 도/시/군 단위에서 정보화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곳이 전자업무연구소이므로 정보기술부문 기술고급중학교는 이곳의 업무와 연결시켜 설치되고 있는 듯하다. 즉 전자업무연구소를 거점으로 혁신체제의 전국화, 지방화를 가속시키기 위한 인력양성 체계로 정보기술부문 기술고급중학교가 전폭적으로 설치, 운영되는 흐름이다. 북한 경제 상황의 변화가 또 한 번 급물살을 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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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표본공장으로 전변된 희천련하기계종합공장을 현지지도하시였다”, 『로동신문』 2010.12.22;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희천청년전기련합기업소와 희천발전소건설장을 현지지도하시였다”, 『로동신문』 2010.12.23; 김치관, “정성장 "김정은 2008년 12월 20일 희천전기 현지지도"-북통신 사진속 현판으로 확인돼.. "9.28 전부터 김정일 보좌"”, 『통일뉴스』 2010.12.24 (http://www.tongilnews.com) 

2) “원수님의 위인상 담은 첫 회상실기도서 : 내각총리 등의 체험담 수록”, 『조선신보』 2012.12.14.  

3) “나라의 정보기술발전에 이바지해가는 청춘집단 : 평안북도전자업무연구소 일군들과 종업원들” 『로동신문』 2019.11.21. 

4) “천출위인들의 현지지도표식비 여러 단위에 건립”, 『로동신문』 2015.09.09. 

5) 김선일, “<락원에로의 길을 열어제낀 자강도사람들> 위대한 장군님께서 다녀가신 강계시안의 여러 단위들”, 『천리마』 2009년 7호. 

6) “<새로운 혁명적대고조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올리고있는 자강도사람들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지지도를 받은 강계시안의 여러 단위들에서-> 더 높은 목표를 향하여 질풍같이”, 『로동신문』 2009.02.10. 

7) “정보화실현의 앞장에 선 집단 : 자강도전자업무연구소에서”, 『로동신문』 2020.03.13. 

8) “시대의 숨결에 심장의 박동을 맞추며 : 남포시정보화관리국의 일군들과 연구사들”, 『민주조선』 2017.10.27; “<신형코로나비루스감염증을 철저히 막자> 항시적인 긴장성을 유지하며 방역사업 계속 강화 : 각지에서”, 『로동신문』 2020.03.15. 

9) “나라의 정보기술발전에 이바지해가는 청춘집단 : 평안북도전자업무연구소 일군들과 종업원들” 『로동신문』 2019.11.21. 

10) “전자업무연구소를 훌륭히 건설”, 『로동신문』 2012.01.30. 

11) “<새로운 혁명적대고조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올리고있는 자강도사람들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지지도를 받은 강계시안의 여러 단위들에서-> 더 높은 목표를 향하여 질풍같이”, 『로동신문』 2009.02.10.; 김정일, “세 시기, 21세기는 정보산업의 시대이다(2001년 3월 11일)”, 『김정일선집』 15권 (조선로동당출판사, 2005), 110-117쪽. 

12) 김정은, “제7차 당대회에서 한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 『로동신문』 2016.05.08. 

13) “<새로운 혁명적대고조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올리고있는 자강도사람들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지지도를 받은 강계시안의 여러 단위들에서-> 더 높은 목표를 향하여 질풍같이”, 『로동신문』 2009.02.10. 

14) “<온 나라에 체육열풍을 일으켜 당의 체육강국건설구상을 빛나게 실현하자 > 높아지는 집단의 위력 : 황해남도 정보화관리국에서”, 『민주조선』 2017.01.10. 

15) “라선시피해복구사업을 적극 지원-평안남도에서”, 『민주조선』 2015.09.27. 

16) “<모든것을 인민생활향상을 위하여! 과학과 기술을 보검으로 틀어쥐고> 자체의 힘으로 현대화를 다그쳐: 홍원군에서”, 『로동신문』 2010.07.20; “<온 사회에 차넘치는 고상한 정신과 미덕의 향기> 이런 미더운 청년전위들이 청년강국의 주인공들이다 : 제2차 전국청년미풍선구자대회이후 청년동맹일군들과 청년학생들속에서 발휘된 소행”, 『로동신문』 2015.08.13. 

17) “가치있는 프로그람들을 개발하여 : 남포시 천리마구역전자업무연구소에서”, 『민주조선』 2017.09.12. 

18)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강계시의 여러 단위들을 현지지도하시였다”, 『로동신문』 2008.12.17. 

19) “가치있는 연구성과들을 적극 도입 : 함경남도전자업무연구소에서”, 『민주조선』 2009.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