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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동향 브리핑(이대 통일학연구원)

주체와 개혁-개방은 양립불가능인가? (2010년 9월 20일 ~ 2010년 9월 26일)


오는 9월 28일이면 제3차 로동당 대표자회가 개최된다. 대표자회란 공식적인 당대회를 대신하는 임시 당대회와 같은 성격이므로 1980년 제5차 당대회 이후 30년 만에 개최되는 로동당 최대의 회의가 되는 셈이다. 이번 당대표자회에서는 당의 지도부를 새롭게 인선하고 중요한 정책적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고 발표되어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려 있다. 특히 최근 김정일의 건강이 급속히 나빠지고 있으므로 그의 뒤를 이을 후계체계가 어떤 식으로 마련될 지가 최대의 이슈가 되어 있다.

이런 시점에 지난 9월 18일자 로동신문에서는 “주체화는 우리 경제의 부흥과 비약의 기치이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북한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주체’, ‘주체화’의 경제적 측면에 대한 글이었다. 그런데 이 글을 토대로 일부 언론에서는 북한이 ‘개혁-개방’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의 기사를 내놓았다. 맥락을 잘못 읽은 기사였다.

 주체사상의 기본 요소로 ‘자주, 자립, 자위’ 그리고 ‘주체’가 거론된다. 즉 자립경제란 주체의 경제적 측면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번 로동신문 기사에서는 자립경제의 기틀이 마련됨으로써 경제의 주체화가 상당한 수준에서 진척되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주체철, 주체비료, 주체섬유’ 그리고 ‘주체적인 CNC공업’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하면서 자립경제의 앞날이 밝다는 점에 힘을 주고 있다.

북한에서 이야기하는 경제의 주체화란 자체의 연료, 원료, 기술, 인력을 바탕으로 하는 경제를 말한다. 즉 자립도를 높이겠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여기서 자립도란 명확한 구분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기마다 자립도의 정도가 변해왔다. 자신감이 강할 때에는 모든 것을 자기들 손으로 직접 할 것을 원했고 상황이 어려울 때에는 자립도의 정도를 최소한으로 설정하기도 했다.

최근 북한의 상황이 북한 역사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자립도의 정도가 상당히 낮아진 상태이다. 외국의 기술에 의존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자신들이 배워서 운용할 수만 있다면 주체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고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예전 같으면 허용하지 않았을 턴키 방식의 생산 시스템의 수입을 요즈음은 허용하고 있다. 실리를 이야기하면서 자체 생산과 수입의 수지타산을 계산하기 시작하였다.

자립을 넘어 쇄국, 고립의 의미로 ‘주체’를 읽는 사람들은 이처럼 주체를 강조하는 모습에서 여전히 고립적인 이미지만 찾겠지만 북한이 이야기하는 ‘주체’에서 대외 협력을 배척하는 흐름은 크지 않다. 특히 요즈음은 북한 경제의 회생을 위해서 외부의 도움이 절실하기 때문에 주체와 대외협력이 서로 충돌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설명을 자주 하고 있다. 최근 김정일이 중국의 개혁개방 성과를 높이 인정하였기에 주체와 개혁개방의 양립가능성에 대한 강조가 많아졌다.

따라서 위 신문 기사에서 주체를 강조했다고 해서 북한의 정책이 개혁개방과 반대로 가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은 것은 맥락을 잘못 읽은 것이다. 기사 자체 내용만 보더라도 본뜻은 2012년까지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기 위한 경제발전전략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그런 전략이 잘 수행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 개혁개방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원하는 것만 보려고 하다보면 오히려 제대로 된 북한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