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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심분리기와 경수로 공개에서 읽어야 한 것 ( 2010년 11월 15일 ~ 2010년 11월 21일) 지난 주에 북핵과 관련한 새로운 사실들이 몇 가지 전해졌다. 2012년을 완공 기점으로 삼은 경수로가 영변 지역에 건설되고 있고 경수로 연료를 만드는 원심분리기가 며칠 전부터 작동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2009년 5월 2차 핵실험 이후 핵관련 소식이 잠잠하다가 핵관련 소식이, 그것도 구체적인 물리적 실체를 가진 상태로 전해지니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여기에 집중되었다. 사실 북한의 핵활동은 협상을 통해 중단되지 않고서는 계속 진행되어 왔다. 즉 제네바 합의와 같이 미국과 협약을 맺으면서 중단한다고 선언했다면 모를까 최근 핵활동을 재개하겠다고 밝힌 만큼 북한의 핵활동은 당연한 일이다.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략적 인내 등의 이름으로 기다리는 전략이 추진될 때, 북한의 핵활동 또한 중단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보기
(민족21 2010년 6월호) 에피소드로 본 北 과학사 인물열전 ④ 도상록 (민족21 2010년 6월호) 에피소드로 본 北 과학사 인물열전 ④ 도상록 강호제 핵물리학의 아버지 도상록 1946년 여름, 김일성은 남에서 어렵게 오셔온 과학자들을 만났다. “다들 어려운 걸음 하셨습니다. 앞으로 우리 민족의 경제가 빨리 클 수 있으려면 과학기술의 힘이 필요합니다. 함께 열심히 해봅시다.” “남에서는 미군정이 저희 같은 과학자들을 배척하고 있는데 북에서는 저희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해서 많은 고민 끝에 올라왔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정말 잘 오셨습니다. 현재 북에는 일제 시기 건설된 각종 공장과 생산시설들이 많이 있는데 작동을 못 하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일제가 도망가면서 고장낸 것을 고치지 못한 것도 많고 기술자가 부족하여 어떻게 작동시켜야 할지 몰라서 운영을 못하고 있는.. 더보기
(민족21, 2010년 11월호) 처음으로 강성대국 대문에 들어선 마을 '3월5일청년광산' 1954년 어느 날, 전쟁 시기 중국 길림성으로 피난갔던 리종만이 귀국하여 김일성 주석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리종만은 전국 각지에 10여 개의 큰 광산과 수백 개의 광구를 가진 ‘대동광업주식회사’, ‘대동광산조합’와 수백 만평의 토지를 가지고 당시로선 파격적인 3:7 소작제를 시행한 ‘대동농촌사’, ‘대동출판사’, 그리고 평양의 ‘대동공업전문학교’ 등 ‘대동콘체른’이라 불린 총 5개 거대 사업체의 수장을 지낸 일제 시기 대표적인 사업가 중 한 사람이다. 1949년 평양에서 열린 ‘조국통일 민주주의 결성대회’에 조선산업건설협의회 회장 자격으로 월북했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 그는 애국열사릉에 안치된 유일한 자본가 계급 출신이다. “객지 생활이 많이 불편하셨지요?” “아닙니다. 모두들 힘들었을텐데 잘 챙겨주.. 더보기
(민족21 2010-12월호) 설계통일을 통한 기술혁신 : 조선식 변압기의 탄생 1960년대 초 어느 날, 대안전기공장 제관직장에서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기술혁신에 대한 강연을 진행하였다. 강사로 나선 기술부의 기사장은 기술혁신이라는 것이 거창한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작은 부분이라도 불합리하거나 불편한 것을 수정하다 보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었다. 새로운 이론이나 방법을 개발하는 것은 과학기술을 잘 아는 과학자나 기술자들이 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작업방법에서 불합리한 점이나 불편한 점을 찾아 개선할 수 있는 아이디어는 직접 생산을 담당한 노동자들이 잘 알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과학기술 내용과 관련한 부분은 기술부에서 얼마든지 뒷받침해 줄테니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제안해달라고 당부하였다. 제관직장의 리시윤은 강연을 들으면서 오늘 하던 자.. 더보기
북한의 핵 (2010년 11월 08일 ~ 2010년 11월 14일 ) 북한에 대한 제재 조치로 ‘이중용도 물품’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가 있다. 군수 물자 생산과 직결될 수 있는 물품이 북한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그런데 개념상으로만 보면 이런 구분이 언뜻 명확한 듯하지만 실제 현실과 연결시키면 명확성이 대폭 약화된다. 대부분의 물품들은 다양한 용도로 활용될 수 있으므로 군수/민수 구분이 명확하게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CDMA, 인터넷, 전자레인지, 레이다 등 현대 생활에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는 대부분의 기술과 물품들이 원래는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되었다가 용도가 확장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중용도 물품이라는 개념은 말의 늬앙스에 비해 주관성이 상당히 강해진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세계적 차원의 경쟁력이 있는 기술은 단연코 미사일 제.. 더보기
2002년 신의주특구와 2010년 북중관계 (2010년 11월 01일 ~ 2010년 11월 07일 ) 2002년 7월에 새로운 경제조치가 발표된 직후인 2002년 9월에 북한은 신의주 특구 계획을 발표한 적이 있다. 고난의 행군 시기를 끝내고 강성대국 건설 구상을 구체화시키면서 마련한 경제발전계획을 하나씩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당시의 조치들도 2001년 1월 김정일 위원장이 상해 등을 방문한 다음 발표된 것이라 중국의 지원 약속이 있었다는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2002년 10월 초, 초대 신의주특별행정구 장관으로 임명된 양빈이 중국 공안에 의해 긴급체포됨에 따라 신의주 특구를 시작으로 진행하려던 경제발전계획은 급제동에 걸렸고 전면적으로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북한은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대표단을 파견하여 양빈의 석방을 촉구했지만 실패했다. 이로 인해 1990년대 초.. 더보기
북중 군사동맹의 변곡점 (2010년 10월 25일 ~ 2010년 10월 31일) 지난 10월25일 북한 평양의 평양경기장에서는 한국전쟁 60주년 중국참전 대표단 환영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에 김정일 위원장과 김정은이 나란히 참석하여 사람들의 주목을 많이 끌었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차기 중국 최고 지도자로 떠오른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한국전쟁을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언급하여 많은 논란이 빚어졌다. 한국전쟁이 남침이냐 북침이냐와 관련한 논란이 중심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이 많이 간과되었다. 최근 북한과 중국의 군사교류 상황을 살펴보면 북중 군사동맹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이 명시적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지난 8월 말,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이런 변화의 중심에 놓여있었다는 분석이 이로써 상당히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시.. 더보기
후계자 선출과 관련한 논의와 관련하여 놓치고 있는 것 (2010년 10월 18일 ~ 2010년 10월 24일) 3차 당대표자회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논란이 된 이야기는 후계자 문제의 공식화일 것이다. 김정일의 셋째 아들인 김정은이 공식적으로 후계자로 내정되었음이 3차 당대표자회를 통해 드러났고 당대표자회 직후 양형섭과 같은 고위 간부들에 의해 직접 언급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남한 내에서 북한의 세습 문제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런 북한의 문제가 오히려 남한 내부의 문제로 전이되어, 종북주의 논란이 다시 불거진 것이다. 북한의 후계자 문제를 적극 비판하지 않는 사람들의 자세를 ‘종북주의’라고 규정하면서 비판하는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김일성으로부터 3대째 혈연적 관계로 이어진 것을 세습이라고 보고 이것이 명백히 잘못된 것이므로 이를 적극 비판하지 않는 입장이란 ‘북한을 추종한다’라.. 더보기
제3차 노동당 대표자회 관련 뉴스들이 놓친 것 (3) : 로동당 규약 개정 (2010년 10월 11일 ~ 2010년 10월 17일) 이번 당대표자회에 대한 관심이 약간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이유 중 하나가, 당대표자회 개최 이유이자 의결내용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이번에 의견한 내용은 다음과 같은 3가지였다. 1. 김정일 장군님을 조선로동당 총비서로 변함없이 높이 추대할 데 대하여 2. 조선로동당 규약개정에 대하여 3. 조선로동당 중앙지도기관 선거 이중 북한의 변화와 관련하여 의미가 큰 것이 2번이었다. 당-국가 체제인 북한에 있어서 노동당 규약의 변화는 국가의 전략적 노선이 변한 것과 같다. 아직 개정된 규약의 전문은 공개되지 않아 자세한 분석은 힘들지만 공개된 ‘서문’만으로도 중요한 변화를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이전 규약과 이번에 개정된 규약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자.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은 공화국 북반부.. 더보기
제3차 노동당 대표자회 관련 뉴스들이 놓친 것 (2) : 2010.9월 당대표자회 개최 연기 후 자강도를 현지지도한 이유 (2010년 10월 4일 ~ 2010년 10월 10일) 제3차 당대표자회 개최를 처음으로 공지한 6월 23일자 뉴스에는 개최 시기가 정확한 날짜로 나오지 않고 ‘9월 상순’으로만 되어 있었다. 그래서 9월에 접어들면서 국내외 모든 사람들의 관심은 언제 당대표자회가 개최될까에 대해 쏠려 있었다. 하지만 그 직전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막대한 수해 피해가 발생하여 정상개최가 어렵게 되자 사람들의 관심은 개최 시기보다 개최 여부에 더 관심을 가지고 북한 언론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9월 11일 경, 상순이 다 끝나갈 무렵까지 당대표자회가 개최되었다는 소식은 안 나오고 대신 김정일 위원장이 자강도의 ‘3월5일청년광산’을 현지지도하고 있다는 소식만 전해졌다. 8월 말 중국 방문 직전인 7월 말에도 자강도 지역을 현지지도했던 김정일 위원장이 또 다시 자강도 지역을 .. 더보기